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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요일별 특집

[온고을문학산책] 늙은 가지에도 꽃은 피나니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1.05.12 17:50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저 유명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찬양한 봄날의 서정이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다.
‘봄날 밤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詩文)의 서’와 같은 문장이다.

“무릇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
시간은 긴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
부평초 같은 인생 꿈같은데 즐긴다 한들 얼마나 되랴!
따뜻한 봄날의 아련한 경치로 나를 부르고
천지가 나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주었음이라”

벚꽃이 만개하여 전국이 꽃 대궐에 싸였다. 남도 다솔사에서 올라오는 길도 꽃구름에 떠오는 것 같았다. 하동 쪽으로 올라오면 벚꽃 10리 길도 만나고 섬진강이 꽃구름으로 덮여서 하동 포구에서부터 가로수의 벚꽃이 환희에 차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벚꽃 터널을 이루는 길가에 차를 세운다. 뒤따라오는 자동차들이 줄을 서고 사진을 찍는다. 혼자 가는 사람도 꽃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듯,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인사를 나눈다. 하동포구 강가에는 둘레길이 있다. 데크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수놓인 카펫을 밟으며 걷는 맛이 그윽하다. 언제 이런 풍경을 보았을까. 천지의 은혜로움을 누리는 기쁨을 어찌 축복하지 않으랴! 이 순간, 시간이란 긴 세월을 지나는 나그네이며 또 오늘 벚꽃 길을 지나는 나그네라! 잠시 누리는 행복은 꿈 같이 꿈 너머로 사라질진대….
월요일인데도 쌍계사 근처에 오니까 자동차가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눈꽃들이 잠시 나무에 붙어서 꽃구름으로 소복하게 쌓였다. 화개천 양쪽은 활짝 핀 벚꽃 길이 띠를 이룬다. 꽃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도 뭉개 뭉개 모두 행복하다.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은 자동차들이 밀려서 꽃 터널 속에 갇히는 즐거움도 누린다. 천천히 꽃비를 감상하며 봄날의 상념에 젖는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걸으면서 화개천의 흐르는 물줄기에 빠질 듯한 꽃가지들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눈처럼 휘날리는 꽃잎을 손들어 전송하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져서 모인 꽃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가는 길이 어디 일지 마음으로 그려본다.
고목이 된 벚나무들이 굵은 꽃가지를 늘어뜨리고 화개천을 따라 줄 서 있다. 시커먼 둥치의 옆구리에서 불쑥 불거져 나온 꽃송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알 수 없다. 그 신통력, 꽃잎들은 어디를 갔다가 봄날 이맘때만 되면 다시 나무속으로 들어갈까. 나도 거기가 어딘지 알고 싶다. 가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떠나간 모든 임이 꽃잎이 되어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꽃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나 역시 세상에 태어나서 몇 십 번의 봄 향기가 나의 일부가 되어 쌓였을진대, 어찌 그 꽃님들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으랴! 환희심(歡喜心)이 뭉개 뭉개 피어오른다.
늙은 벚나무도 옆구리에서 툭툭 생생한 꽃잎을 틔워낸다. 꽃잎 날리는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은 옆구리에서 싯다르타 태자를 생산했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을 떠났지. 그리고……. 나도 늙었지만, 싱싱한 정신으로 옆구리에서 오래 기억될 글줄이나 터졌으면…. 늙은 벚나무의 몸피에서 피워낸 꽃잎 같은, 아니 가슴에 쌓인 그리움이 꽃 같은 글줄이 되어 생산되면 좋으련만, 황홀하고 환장할 봄이 누군가의 가슴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열매 같은 문장으로 익어가도록.
이백이 저런 명문장을 이미 써버렸고 송한필이 짧은 인생을 이리 읊었으니 나는 즐거이 시정(詩情)을 음미하며 묵묵히 세월을 이겨보리라.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어제 내린 비에 핀 꽃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 가련타, 봄날의 일이 비바람 속에 오가네. 인생사가 또한 그러하니….
어제 화사했던 꽃잎이 오늘 밤비에 다 떨어지겠다.

/조윤수
전주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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