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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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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눈·코·입이 눈썹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 어째서 너는 우리 위에 붙어 있으며 거만을 떨고 있냐? 도대체 하는 일이 뭔데? 라며 눈썹에게 불평하였다. 그러자 눈썹이 말하길 자네들은 정말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지! 음식을 먹고, 숨을 쉬며, 사물을 식별하는 등 자네들의 엄청난 수고에 늘 감사하고 있네, 나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네,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뭐라고 확답을 할 수가 없네. 다만 조상 대대로 물러 준 자리에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네!”
중국의 어느 문인이 쓴 수필 ‘얼굴 문답’의 내용이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풍자다. 입·코·눈 등이 각자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다가 마침내 눈썹에게 넌 뭐가 잘났는데? 라고 따졌지만 대답은 의외다. 미안하다는 겸사 뿐 논쟁은 더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죄송하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원하겠는가? 잘났다고 우기는 그들의 존재감은 일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대신 그 자리엔 얼굴 가리며 미안하다는 겸손이 오히려 최고의 주인공이 됨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 보면 가장 훌륭한 지혜는 겸손과 친절임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으며 그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것이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은 태도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자기를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하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더욱 정진하며 지혜를 쌓아갈 수 있게 됨을 뜻함이다. 이와 반대로 교만은 배려 대신 먼저 대접받으려 하고, 자신을 자랑하며 오만하고 불손해져서 마침내 분쟁을 만든다. 이루 셀 수 없는 겸손의 명언들이 우릴 유혹하며 가르치지만 애써 개의치 않으려는 무관심은 교만의 허영심만 키울 뿐이다. 노나라의 장수 맹지반은 부대의 맨 뒤에서 끝없이 추격해오는 적을 방어했기에 부하들을 무사히 성내로 철수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말이 도무지 달리질 못해서 뒤에 쳐졌다고 변명한다. 자신의 공을 숨긴 채 말을 탓한다. 수많은 장수 중 오직 무명의 맹지반이 공자의 뇌리에 기억되어 논어(옹야편 13장)에 실리고, 2,500여 년 이상 회자 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땅은 그 속에 큰 산을 품고 있으면서도 결코 이를 뽐내지 않는다.’ ‘제아무리 주공과 같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면 그 나머지는 더이상 볼 것이 없다.’ ‘교만하면 손해를 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 ‘진실 되고 신의가 있으면 얻게 되고 교만하고 방자하면 잃게 된다.’ 이런 이치를 꿰뚫고 있었던 공자는 자공에게 얄궂은 질문을 던진다.
-“너와 안회 중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어찌 수제자 안회를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둘을 알 뿐입니다.”
-“그래 너는 안회 만은 못하지(弗如也). 나와 너 모두 안회 만 못 하지!(吾與女弗如也)”
스승의 장난기 어린 질문에 제자는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곤혹스런 상황에 겸사로써 침착하게 대답한다. 게다가 자신보다 한 살 연하인 안회에 비교되는 것도 자존심 상했지만, 그만 못하다는 것을 전제한 스승에 자공은 노련한 외교관답게 정면 돌파한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는 못해도 둘은 안다는 내면의 자긍심은 발전 가능성을 품고 있는 달변가의 겸손이기도 했다. 이에 스승 또한 그래 안회 만은 못하다면서도 ‘不’보다 더 강한 어조인 ‘弗’을 사용하여 ‘불여야(弗如也: 같지 못하다)’라고 단정한다. 그러면서 바로 이어서 (스승인) “나와 너도 안회 만 못 하다(다른 해석도 가능).”라는 겸사를 더한다. 자공의 체면을 살리면서도, 자신의 불초함을 인정해버린 겸손이다. 좀처럼 부족함을 시인하려 들지 않은 시대 상황이었음에도 자공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씨는 위대한 스승상을 읽을 수 있는 예화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에 자공은 위나라의 재상도, 여러 군주의 존경을 받는 대학자이자, 정치가며 훌륭한 상인이 된다. 겸손이 만든 축복이었다. 초발심자의 하심(下心), 공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유배지에서 죽으며 겸(謙) 자를 유언한 조선의 관료 김수항(1629~1689), 영의정을 여덟 번이나 지낸 끝에 깨달은 지혜 “교만하면 덕을 손상하게 된다”면서 아들에게 겸손을 가르쳤던 조선의 문신 최석정(1646~1715),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이 낮추는 이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어도 시소(Seesaw)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자신을 낮추면 상대가 오르게 되고, 그러면 상대도 자신을 낮춰 나를 높여준다. 사진을 찍을 때도 낮추면 상대를 알맞은 구도의 틀에 넣을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교만이 자초한 불행이 생길 뿐이다. 오만은 천사도 악마 되게 하지만 겸손하면 누구나 천사가 된다. 높이려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는 이치는 학문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이치)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진리다. 최고로 높이려면 최대로 낮추라는 놀이터의 시소, 오늘도 말없이 온몸으로 대겸(大謙)을 가르친다. 연신 미안하다며 열심히 자리만 지키고 있는 눈썹처럼 말이다.
/양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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