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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기획|특집

전북민주동우회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 ‘정인자 총장’

박찬복 기자 입력 2021.06.17 17:49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 출신
전민동 즉, 전북민주동우회 정인자 사무총장은 전북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 출신이다.
1967년 생인 정 총장의 본가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이다. 처가를 영광군 백수읍에 둔 선친이 고창군에서 김제시로 생활 터전을 옮겨 정 총장은 탯자리를 만경읍에 두게 됐다.
정 총장은 농부인 선친 슬하 1남 6녀 중 넷째다.
만경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정 총장은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했다. 1970년 대 초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1980년대 초, 편모인 어머니가 자식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기 때문이다.
지평선의 고을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夢山里). 북서쪽에는 만경강이 흐른다. 마을 주변은 평야다. 마을엔 작은 산이 있다. 몽산이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이 마을엔 원래 산이 없었다. 까마득한 그 옛날 어느 날인가, 어떤 도인이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마을에 산이 생겼단다. 그래 ‘꿈 몽(夢)’, ‘메 산(山)’을 쓴 ‘몽산(夢山)’이란 지명이 생겼다는 것.
한편, 몽산리는 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 꿈을 꾸는 모습이라 한다. 그래서 ‘우몽산(牛夢山)’이라 불렀고, 훗날 글자 수를 줄여서 ‘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아무튼 정 총장은 이런 마을에서 태어났고, 초·중·고를 만경읍에서 마친 뒤, 서울로 상경했다.

■ 전민동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
전민동(全民同). ‘전북민주동우회(全北民主同友會)’의 약칭이다.
전북 출신 민주 인사들의 모임인 전민동은 5·18광주민주운동을 겪고 난 직후인 1982년 10월, 창립 준비가 시작됐다. 동아투위 즉,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창립 논의가 이루어졌다.
박정희의 유신통치 전후부터 전북 출신의 민주인사들은 운동권의 학생들과 서로 교류했다. 그러던 중 1983년 종로 한일관에서 30여 명의 전북인이 전민동 준비모임을 가졌다.
이듬해인 1984년 5월 12일, 한승헌 변호사, 이은영 회원 등 100여 명이 혜화동 진아춘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정동익 씨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총무는 소병훈 회원을 선임했다. 이렇게 해서 전북민주동우회가 출범했다.
1984년 출범 이후, 전민동은 민주 의식을 바탕으로 전북인의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연대했다. 회원들 상호 간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도 교류했다.
오늘날에도 전민동은 서울에서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정기적으로 월례모임을 갖는다. 매월 열리는 월례 모임에서는 시대적 현안이나 과제들을 숙고해서 발제자를 초청, 주제발표를 듣고 질의응답과 토론도 병행한다.
2021년은 전북민주동우회 창립 37주년이다.
현 회장은 김영일 씨다. 부안군 출신이다.
정 총장은 3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민동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이다. 2년의 임기는 지난해 5월 시작됐다. 내년 5월 임기가 만료된다.

■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여성위원장
흥사단(興士團). 1913년 5월 13일,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단한 민족운동단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교육자이자 사상가로도 뛰어났지만 독립운동사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13년 미국에서 창단된 흥사단은 중국 상하이에도 지부가 있었다. 8·15해방이 되면서 미국에 있던 흥사단이 국내로 들어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흥사단을 창단한 것은 독립투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기록에 따르면, 해방 전 단우 수는 600명 정도였다. 그 가운데 175명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업적으로 국가의 서훈을 받았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흥사단 아카데미 출신 학생들이 큰 역할을 했다. 비정부기구(NGO)라고 할 수 있는 단체가 거의 없던 시절, 흥사단은 NGO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민주열사’ 중엔 흥사단 아카데미 출신도 적지 않다.
흥사단 산하엔 ‘흥민통’이라는 조직이 있다.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의 약칭이다.
흥민통은 흥사단의 목적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구국이념을 바탕으로 겨레 사랑정신과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민족의 발전과 평화통일을 연구하고, 교육사업과 실행사업을 전개함으로써 민족통일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1997년 3월 설립됐다.
역대 흥민통의 주요 인물로는 반재철 씨, 서영훈 씨, 이봉조 씨, 서주석 씨 등을 꼽을 수 있다.
故 이봉조 씨는 전 통일부 차관이다.
서주석 씨는 문재인 정권 초대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현재는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맡고 있다.
전민동의 정 총장은 흥민통의 여성위원장도 맡고 있다. 2000년 대 들어서 흥사단 활동을 해 온 정 총장은 흥민통의 주요 멤버로 활동 중이다.
한편, 정 총장의 둘째 딸인 서이을(현재 전북대 정외과 3학년 재학 중) 양은 2013년 흥사단 창단 100주년에 흥민통 통일천사 홍보대사를 맡았다. 서이을 양은 당시 서울 배화여중 2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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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수막걸리’로 한때 양조장 운영
2010년 4월, 구리시 사노동엔 작은 양조장이 세워졌다. 막걸리 제조업체인 이 양조장의 명칭은 ‘한민족식품연구원’.
한민족식품연구원이 제조·유통한 막걸리 브랜드는 ‘얼수’. 우리가락 우리소리의 추임새인 ‘얼수’ 또는 ‘얼쑤’에서 따온 이 브랜드는 한자로 ‘누룩 얼, ‘물 수’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구리탁주’라는 지리적 표시를 주창한 얼수막걸리는 한 때 구리시를 대표하는 막걸리였다. 당시 구리시를 대표하던 축제인 ‘유채꽃축제’, ‘코스모스축제’, ‘전어축제’ 등의 현장에서 독점 판매됐다.
2012년 12월 17일 오후,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구리시 수택동 구리시장 부근에서 선거 유세를 펼쳤다.
이날 유세차에 오른 문재인 후보는 구리의 막걸리를 선물로 받아 손에 들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 막걸리는 구리탁주 얼수막걸리였고, 유세차에 올라 문재인 후보에게 얼수막걸리를 전한 사람은 한민족식품연구원 대표였던 정 총장이었다.
이틀 뒤인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정 총장은 얼수막걸리 20여 상자를 문재인 대선후보의 한 캠프에 배달해 두었다. 문재인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얼수막걸리로 축배를 들라고 후원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선거 당일인 2012년 12월 19일 오후 쯤, 문재인 대선후보의 한 캠프에 배달해 두었던 얼수막걸리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듬해인 2013년, 흥사단 창단 100주년이었다. 둘째 딸인 서이을 양이 흥사단 창단 100주년에 맞춰 흥민통 통일천사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그해 7월, 정 총장의 얼수막걸리 양조장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만약,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정 총장의 얼수막걸리는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어쩌면 얼수막걸리는 ‘대통령 막걸리’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행운이 깃들었다면 얼수막걸리는 2013년 7월, 폐업의 길을 걷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정 총장의 얼수막걸리는 전북지역에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전북의 모 막걸리 업체에서 정 총장의 막걸리 브랜드인 ‘얼수’를 사용하기로 이미 합의가 완료된 상태다.
한편, 정 총장은 유통 기간이 짧아 수출이 까다로운 우리 막걸리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우리나라 벼농사의 본고장인, 지평선의 고장 김제시 만경읍에서 태어난 정 총장은 막걸리의 성지인 전주시에서 ‘한민족막걸리축제’를 열려고 시도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이 함께 막걸리를 손에 들고 ‘얼수’를 외치는 세계적인 축제를 열려고 무던히 애를 쓴 바 있다.
막걸리의 성지 전주시에서 한민족막걸리축제를 여는 그날은 언제일까.
어쩌면 전민동 37년 역사상 최초의 사무총장인 정인자 총장이 2013년 폐업 후, 숱한 고난을 견디면서도, 오늘까지 그 상표를 손에 꼬옥 쥐고 있는 ‘얼수막걸리’의 부활에 달려 있는 것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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