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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초입으로 들어서는 망종 무렵은 오디가 까맣게 익어가고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철 지난 찔레순이나 잘 익은 오디를 찾아 들녘을 쏘다녔던 가난한 시간이었다. 봄과 여름의 징검다리에 놓여있는 보리가 여무는 시간은 그야말로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허기 진 여름날이었다.
김제 들녘 만경평야로 접어드는 황톳길 따라 달리다, 야산 기슭에 가시덤불을 이고 무더기로 피어있는 순백의 찔레꽃을 본다. 도심 속 울타리를 화사하게 너울대며 피어있는 붉은 장미는 세련되고 화장기 짙은 도심 속 여인이라면, 찔레꽃은 외진 산기슭이나 길섶에 뻐꾸기 울음 따라 피고 지는 순박한 산골 소녀 순이의 모습이다. 소박하면서도 은은한 향기와 함께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꽃이다. 하얀 찔레꽃에 마음이 가는 것도 눈길이 가는 것도 그런저런 이유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들녘을 생각한다. 지난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한이 많은 땅이다. 수탈의 상징이었던 양곡창고와 도정공장의 흔적, 그리고 부와 권세와 수탈의 상징처럼 남아있는 일제식 건물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처럼 존재하고 있다.
조선 백성의 절반을 먹여 살렸다는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동진강이 도도하게 흐른다. 수많은 민초들의 외침과 북소리와 함성을 안으로 삼켜야 했던 속 깊은 물줄기가 마르지 않는 땅이다. 쌀의 역사 속에서 아픔과 수난의 이야기를 땅의 무늬로 새기고 살아가는 들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쌀의 고장이다. 벽골제가 증명하듯이 용수와 일조량이 풍부하여 벼 재배에 최적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럴진대, 김제 들녘이 변하고 있다. 쌀농사를 근본으로 여기고 살아온 쌀의 후손들이 소득이 낮은 벼농사를 포기하고 기름진 옥토에 콩을 심고 있다. 이 나라의 식량을 책임져 왔던 김제평야가 콩은 밭작물이라는 상식을 넘어 저 너른 들녘이 콩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벼를 심는 것보다 콩을 심는 것이 더 소득이 높다고 콩 자급률이 낮고 쌀이 남아돈다고 비옥한 곡창지대가 콩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천년을 지켜온 이 땅의 조상님들께 묻고 싶다. 긴 안목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쌀값 하락과 소득을 생각하는 농가의 선택을 탓할 일은 물론 아니다. 전통적 상징적인 민족의 주곡인 쌀 주산지를 지켜가면서 관련된 문제를 풀어내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혜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천년 장구한 물길로 들녘을 적셔 온 강물을 본다. 속 깊은 저 강이 답을 줄 수 있을지, 노을 내리는 넉넉한 들녘이 긴 생각에 잠긴다.
/유인봉
시인/전북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