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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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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순 어느 날, 모악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면서 달성사 부근의 대밭에 이르렀을 때였다. 대나무에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시들어가는 잎과 가지에 걸쳐있는 마른 졸참나무의 꽃 잔해들과 함께 어울려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식물의 천적은 사람이다. 발길이 닿는 대로 밟고, 부러뜨리고, 캐내고, 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는 농작물처럼 사람의 발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식물도 있다. 대나무다. 그래서 대밭은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에 있다.
벼과인 대(竹)는 나무처럼 크고 단단해서 대나무라고 부른다. 속이 비어 가볍고 마디가 있어 잘 부러지지 않아 생활도구나 가구재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필요한 만큼 자주 베어 가니 간벌 효과로 공기유통이 잘 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사시사철 푸르고 웅장한 모습 때문에 군자의 반열에 올라 많은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비닐과 플라스틱의 출현으로 대나무는 실용가치를 상실하고 실생활에서 퇴출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심에서도 멀어져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어려움을 당한다. 단풍이 든 것처럼 군자의 품위를 잃은 모습을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고 공기유통이 되지 않아 영양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
땅속줄기로 번식하는 대나무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한 상황에 처하면, 무기력하게 물러서지 않고 사력을 다해 마지막으로 꽃을 피운다. 대(代)를 이를 마지막 본능적 반응이다. 그런데 그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확실한 모습을 보려고 가지에 걸쳐있는 졸참나무 꽃의 잔해들을 털어내자 실체가 나타났다. 분명히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이었다. 운이 좋게도 50년이나 100년 만에 핀다는 그 꽃을 보니 대나무 꽃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떠올랐다.
몇 년 전에 친구로부터 사진 한 장을 전송받은 일이 있었다. 제목이 50년 만에 피는 대나무 꽃이었다. 가늘고 긴 꽃자루에 달린 붉은 꽃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밝고 고운 꽃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 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읽어보니 대나무 꽃이 아니었다. 친구에게 알려주자, 친구는 당황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큰일이 났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로부터 전송받자마자 많은 친구들에게 전송했는데 가짜 뉴스를 퍼뜨린 장본인이 되었단다.
횡재라고 생각하고 그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꽃이라고 표현하기엔 어딘지 모르게 궁색했다. 그때서야 극한 상황에서 대(代)를 잇기 위해 피운 꽃은 성장과정에서 번식을 위해 피운 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꽃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나 향기를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겨 숨이 막히고 영양실조로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되자, 대나무는 꽃을 피우고, 어서 와서, 밟고, 자르고, 숨통을 터주도록 호소하고 있다. 벌·나비 대신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최후의 몸부림이지만, 찾는 이가 없어 죽어간다.
/이희근
전주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