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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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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던 우리는 동네 아이들과 더불어 연못에 자주 드나들었다. 늘 튼튼한 삼각 다리를 붙여서 함께 자동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기를 들고 다녔는데, 그때의 추억들이 사진처럼, 울긋불긋한 색조의 ‘연못’이란 제목의 그림 속에 담겨 있다. 내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연못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려 그렸지 싶었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인생의 한여름을 수놓고 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여름만 되면 연꽃이 피어나는 공원이 있어 한더위의 열기가 애틋한 뜨거움으로 느껴진다. 덕진공원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몇 년 전부터 연못 한가운데에 돌다리를 놓더니, 올해는 돌다리 가운데 한옥의 쉼터 건물을 지었다. 처음 그 건물을 보았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정문으로 들어갈 때는 멀리서 보여서 풍경을 거스르지는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전의 연화정과 출렁다리가 노후되어 철거해야 했던 것이었다. 덕진공원에는 여고 시절부터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의 각가지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사랑의 열기를 품고 달려갔던 연지, 얼굴의 홍조가 연꽃들로 더더욱 붉어져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날, 이른 아침 안개 속에 시퍼렇게 넘실대는 연잎 사이사이로 올라와 있는 연향이 하늘 한가득 그윽했다. 후끈하게 땀이 배어 끈끈한 여름날의 사랑도 한여름의 소낙비에 젖으면 다시 생기를 얻고 밤바람 속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뜨거운 열기를 날렸지. 연못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옷깃 사이로 연향을 날리며 한 풍경 속으로 어우러졌었지.
연못의 한쪽에서는 오리배를 탈 수도 있었다. 여고 시절 언니와 같이 놀러 와서 배를 타고 사진도 찍었지, 옛날에는 노송동에서 철길을 걸어서 덕진 연못까지 걸어갈 수도 있었던 때가 있었다. 단옷날에는 창포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머리를 감고 물맞이하는 아낙네들도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공원 안에서 단오 행사를 크게 한다. 며느리와 사위를 맞았을 때도 전주에 처음 왔을 때는 덕진공원을 소개하기도 했다. 공원의 주변은 세월 따라 많은 변모가 있어서 옛날의 자연스러운 풍치는 없지만, 둘레의 울창한 숲을 이룬 노거수들은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연못 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팽나무 등걸에 올라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둥치에 많은 옹이가 박혀서 지난한 세월을 말하고 있다. 뜨거운 열기와 혼란스러운 사회현상의 소식도 연 바람이라면 멀리 날려 버린다.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으로 기억하라며.
마침내 연못가의 배롱나무에도 빨간 꽃잎이 달리기 시작하니 초록 나무들은 긴 숨을 들여 마시고 생동감 넘치는 춤사위를 준비한다. 백일 동안 배롱꽃이 피고 지는 사이 눈물 같은 벼꽃도 피어서 영근 꿈을 키울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숨 쉬는 연못의 밀어들, 아침 새벽부터 부지런한 새들의 요란한 지저귐. 여름이 아니면 언제 들을 수 있을 건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꽃. 진흙 속에서부터 맑게 기운을 투과하는 숨구멍을 스스로 만든다. 꽃대 하나로 올곧게 올라와서 가지도 치지 않고 홀로 한세상을 지키는 삶이다. 순수한 맑음의 표상인 백련, 오묘한 홍련의 모습, 어느 한 송이라도 천년의 생명을 이어오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응축된 기운으로 피워낸 꽃이 아닌가. 바라보고 또 보아도 총총한 그리움으로 밀려드는 감회에 젖는 것이리라.
/조윤수
전주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