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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한 노예는 누구나 싫어하지만, 그들을 전폭적으로 신임하며 소금과 생선을 팔게 했다. “벼슬을 하느니 차라리 조한의 노예가 되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였으니 그의 인간적 경영 또한 치부를 위한 훌륭한 상술이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취한 사람들을 예시한다. 즉, 염전을 일군 하동 사람 의돈, 철을 다룬 조나라 한달의 곽종 외에 대장장이, 고리대금업, 도박, 행상, 칼갈이, 목축업자 등 직업에 귀천이 없었다. 부자 또한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 역시 일정한 주인이 없기에, 재능이 있는 자는 재물이 모이고 못난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흩어지듯 재물이 흩어짐을 예 든다. 부를 추구함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알게 되는 인간의 본성이고 그의 지배를 당한다. 이 원리에 정통했던 사람들은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즉,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상행위의 원리는 부를 창출하는 기본이 되었다. 시세 차익은 그들만의 계산법이며 자공이나 백규 그리고 범려 등이 이에 해당하는 달인들이었다. 또 제철업으로 부자가 된 조나라 탁씨와 양나라 공씨는 자기들만의 강점과 열정으로 부를 일궜다.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되어 끌려가면서도 철광석이 있을 만한 곳을 알아 그곳에 남아서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들고 장사하여 이름을 날린다. 그런 그들의 제일 중요한 자산은 무엇보다도 부지런하고 한결같은 성실함이 아닐까 싶다. 밭에서의 농사는 재물을 모으는 방법으로 그리 뛰어난 업종이 못 되지만 진나라의 양씨는 이것으로써 주(州)에서 제일가는 부호가 됐고, 무덤을 파서 보물을 훔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전숙은 그것을 발판으로 일어섰다. 또한 도박은 나쁜 놀이지만 환발은 그것으로 부자가 됐고, 행상은 남자에게 천한 일이지만 옹낙성은 그것으로 천금을 얻었으며, 술장사는 하찮은 일이지만 장씨는 그것으로 천만금을 모았다. 그리고 칼을 가는 일은 보잘것없는 기술이지만 질씨는 그것으로 제후들처럼 반찬 솥을 늘어놓고 식사를 했고, 양의 위를 삶아 말려 파는 것은 단순하고 하찮은 일이지만 탁씨는 그것으로 기마행렬을 거느리고 다녔다. 게다가 말의 병을 고치는 대단찮은 의술로 장리(張里)는 식사 때 종(鐘) 연주를 곁들이게 됐다. 이것은 모두 부지런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일관하며 힘쓴 결과였다. 당시 국가나 사회적으로 큰 부자는 높은 대우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봄가을로 대신들이 진시황을 알현할 때 오지현 땅의 목축업자 ‘나(倮)’도 참석했고, 파 땅의 채광업자인 과부 ‘청(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청은 정조가 굳은 부인이라고 하여 황제가 누각 ‘여회청대(女懷靑臺)’를 지어 칭송했을 정도였다. 이들은 비천한 목장주이고 외딴 시골의 과부에 불과했지만, 만승지국의 황제와 대등한 예를 나누고 명성을 천하에 드러냈다. 그 결과 춘추시대에 부자는 대신과 같은 급의 대우를 받았는데,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와 맞먹고 거만금의 부자는 왕처럼 즐겼다.” 이익이 나는 부자들은 녹봉을 받는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소봉(素封:작위나 봉지가 없는 큰 부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왕관을 쓰지는 않았지만, 제후와도 같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無冠諸侯)는 의미다. 이는 양의 도서를 넘어 지금도 통하는 불변진리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제왕의 권력이 탐나거든 일단 부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그게 세상 사는 이치니까!(物之理也)
/양 태 규
옛글 21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