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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교만이라는 불치병, 富而無驕(上)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8.15 18:07 수정 0000.00.00 00:00

남에 대하여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을
깨닫게 하는
큰 교훈이 되었다

ⓒ e-전라매일
“힘없는 인간들의 충고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중략)~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이룰 것이다”
1812년 겨울 혹독한 추위에도 러시아 침공을 감행하며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철새가 빨리 이동하고 예년보다 더 추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와 여러 경험 그리고 과학적인 예를 들어 원정을 늦추길 건의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유럽을 정복한 기세를 몰아 원정을 강행했다. 결과는 대참패였다. 러시아군의 초토화 작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보급품 조달의 어려움 등이 문제였다.
“군대의 행렬은 무시무시한 눈발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소. 낙오병들은 코사크군의 깃대 위로 쓰러지고 있소” 네이 사령관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특히 베레지나(Berezina)강 전투는 처참했고, 80여 만의 병력이 출정하여 겨우 10만 명도 귀환하지 못했으니 대참극이었다.
마침내 나폴레옹은 1814년 황제에서 물러나 엘바섬으로 유배되고 말았으니, 그의 고집이 부른 패전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했다.
또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해상 강국 아테네는 농업국 스파르타를 얕본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여러 차례 스파르타의 화의 제의를 거부하며 굴복시키려고만 했다. 백척간두에 선 스파르타의 결사 항쟁과 보급로를 차단한 전략에 말려들어 아테네는 결국 항복하고 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중해의 맹주 아테네는 점점 쇠퇴하다가 이탈리아 북부에서 일어난 도시국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모두 교만이 부른 대참극이었다. 이와는 달리 교만을 뉘우치며 새롭게 발전한 지혜도 역사는 함께 기억한다. 하급생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들이받자 “시시한 이발사 같은 녀석이구나!”라며 그의 부주의를 심하게 나무랐다. 그런데 그 생도는 실제로 사관학교 입학 전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발사로 일했다.
남을 무시하며 모욕한 자신의 행동을 몹시 후회한 아이젠하워는 일기에 “남에 대하여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을 깨닫게 하는 큰 교훈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2차 대전 중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수행할 때나 미국 제34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이것이 계기가 되어 늘 남을 배려하면서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우정관을 만든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와 염파 장군의 고사 역시 이의 다름 아니다.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자신보다 세 치 혀로써 벽옥을 지켜낸 인상여가 윗자리에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자주 그를 괴롭혔던 염파였다.
고위 관료의 갈등이 진 나라에 빌미를 제공할 뿐임을 알고 충돌을 피한 인상여의 진심을 뒤늦게 알고 깊이 뉘우치며 사과함으로써 맺어진 친구 간의 우정이다.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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