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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한 톨의 쌀마다, 粒粒皆辛苦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9.07 18:25 수정 0000.00.00 00:00

쌀 한톨 한톨이
모두 농민의
고통과 애환이
깃든 시름 덩어리 그 자체임에
틀림이 없다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가고 그만큼의 발자국 소리
들으며,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비로소 얻게
된다는 소중한
고통의 산물이다

ⓒ e-전라매일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곡창 지대인 오창을 빼앗기 위해 항우가 파죽지세로 침공할 때 유방은 이를 포기하며 피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진시황의 성문지기였던 역이기는 이같이 말하며 결사 항쟁을 간청한다. 이 때문에 오창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한 후에야 영광과 욕됨을 알게 되고 입고 먹는 것이 흡족한 후에야 예의를 알게 된다” 이에서 유래한 말로,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명언임엔 분명하다. 수입원의 기반인 농지의 확보 그것은 전쟁의 승패뿐만이 아니라 왕도의 실현 여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알 한 알 어찌 가벼이 여기리 사람의 생사와 빈부가 달렸는데 나는 농부를 부처님 공경하듯 하지만 부처님은 오히려 굶주린 사람 살리기 어렵네 ~ ” ‘햅쌀을 노래함(新穀行)’이라는 이규보의 시다.
한 알 한 알의 곡식이 사람들의 생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읊은 작품이다. 불교 국가 고려의 무신정권 아래에서 농민을 부처에 비기며 부처도 할 수 없는 굶주림을 그들이 해결해 줌을 묘사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위정자들은 농민을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게 일반적이었다.
조세와 부역 등 온갖 수탈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억누르고 탄압했다. 일찍이 맹자도 “백성이 제일 고귀하다”고 주장하며 역성혁명권까지도 인정했다. 고금을 통하여 무수한 농민반란이나 봉기는 모두 농민을 하늘로 여기지 않았음에 기인한다. 당나라와 명나라의 멸망을 이끈 황소의 난(875~884)과 이자성의 난(1627~1644) 역시 농민 봉기였고, 우리의 동학 혁명(1894)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의 크고 작은 민란이나 농민 투쟁 역시 모두 이 때문이었음은 숱한 역사가 잘 증명한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만고의 진리가 된다. “~ 푸른 잎 새 곡식은 여물지도 않았는데 아전들이 벌써부터 조세 내라고 다그치네 나라 부강하게 하는 일이 농부 손에 달렸거늘 어찌 이리 모질게도 침탈하나!” “모두가 말하기를 관청의 나리는 엄하기만 하고 명령은 한결같이 세금 내길 독촉하니 동쪽 마을에선 납세일을 놓쳐 수레가 진창에 빠진 듯 곤경에 처했다네 관청에선 백성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무턱대고 우리를 매질하네 ~ ”
전자는 농부를 대신하여 읊은 이규보의 시 ‘대농부(代農夫)’이고, 후자는 농민의 고통과 불만을 당나라 문인 유종원(773~819)이 노래한 시 ‘전농(田農)’이다.
농민이 아닌 사대부나 관료의 눈에도 측은하게 여겼기에 그 슬픔과 고통을 대신하여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으로 본 것에 불과하다. 뜨거운 여름날 피땀 흘리며 농사짓는 낱낱의 괴로움 또한 말할 수 없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붉은 태양 이글이글 타오르듯이 뜨거운데 들녘 벼 이삭 반쯤 말라 시들었네 농부 마음 새까맣게 타들지만 지체 높은 양반네들은 부채질만 하는구나!” ‘수호지’의 저자 시내암(1297?~1370?)이 지은 시 ‘적일염염사화소(赤日炎炎似火燒)’다.
무더운 여름날 신선놀음하는 양반과 고생하는 농민을 대비하며 원망한다. 이 때문에 사연 많은 108호걸이 양산박에 모여 부패한 송나라 조정에 맞서 싸운다는 소설이다. 이는 우리의 홍길동전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 ~ 누가 알리오 쟁반에 차려진 맛있는 밥(誰知盤中饌), 한 알 한 알에 농부들의 피땀이 서려 있다는 것을!(粒粒皆辛苦)” 당나라 문인 이신(740~846)의 농민을 불쌍히 여기는 시 ‘민농(憫農)’이다.
그렇다. 쌀 한톨 한톨이 모두 농민의 고통과 애환이 깃든 시름 덩어리 그 자체임에 틀림이 없다.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가고(쌀 米는 위아래 팔八자 2개와 열 십十자의 조합에서 유래) 그만큼의 발자국 소리 들으며,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비로소 얻게 된다는 소중한 고통의 산물이다. 이외에도 “물꼬 밑에 쪼그리고 자야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물관리의 중요성)”, “꼭두새벽 풀 한 짐이 가을 나락 한 섬이다(중요한 퇴비)”, “늦 모 아침저녁 다르다(이른 모내기 독촉)”, “모 떼우기 하루는 닷 세 먹을 식량 더한다(조기 보수의 중요성)”, “삼사월이면 굼뱅이도 석 자씩 뛴다(바쁜 농번기)”, “모판 농사가 반(半)농사다(건묘 육성의 중요성)”라는 등의 격언 또한 같은 의미다. 그야말로 낱알 하나하나에 농민들의 피와 땀이 알알이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평생을 따라다니는 농민의 고통스런 훈장이다. 그럼에도 최근 외국풍에 편승한 빼빼로 데이 열풍과 그를 틈 탄 상혼, 하기 싫고 귀찮은 것에 빗댄 신조어 ‘밥맛이야!’, 먹고 남는 음식들을 마구 버리는 연 10조 원 상당의 음식쓰레기들, 그리고 연례행사가 되어 수매가 인상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핏발선 외침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만일 네가 꿈을 끝까지 좇지 못한다면 넌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다 ~(중략)~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는 갈 수가 없단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의 한 대사다.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에 사는 초라한 백발 노인 버트 먼로는 젊었을 때부터 오토바이 ‘인디언’에 열정이 많았다. 주위의 반대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낡고 고장이 잦은 분신과도 같은 그 오토바이로 미국 보더빌(무제한 속도) 경주대회에 출전한다. 승리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기에 온갖 어려움 끝에 마침내 우승하고야 만다.
비록 풍년이라고 해도 빚지는 줄 알면서 열심히 농약 치며 막걸리 한 사발에 시름 잊는다. 게다가 극심한 이농과 수지타산 없는 현실에 알알이 고생만 가득할 뿐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열정 가득한 우리 농민 버트 먼로들이다. 그럼에도 자신감 충만하여 꼭 우승할 것만 같은 그들, 꿈과 희망을 주는 일과 정책들이 알알이 박혔으면 좋겠다.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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