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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해찰解察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9.14 18:13 수정 0000.00.00 00:00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해찰解察을
자주 해라

ⓒ e-전라매일
해찰解察은 한자 말 그대로, 깊이 살펴서(察) 스스로 문제를 해결(解)한다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한다.’ 또는 ‘한눈을 판다.’라는 말이다. 불교적 의미로는 집착에서 벗어남을 의미 한다. 또한 연모의 표현으로 그리움의 방식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눈앞의 일보다는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보려는 특징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침 또는 그런 행동” 그리고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헛짓을 함”으로 정의되고 있다.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짓을 하는 것이 해찰이다. 일반적으로 ‘해찰부리다’로 쓰이며, 같이 쓰는 말로는 ‘해찰하다’, ‘해찰스럽다’, ‘해찰궂다’ 형태로 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해찰 부리는 버릇이 있는 사람을 ‘해찰궂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서점에 마음에 드는 책이 없어서 해찰만 하다 왔다.’, ‘공부 시간에 아이들이 공연히 해찰을 부린다.’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외에도 부모가 아이를 심부름 보낼 때 ‘해찰부리지 말고 바로 와야 한다.’와 같은 말을 여전히 살아있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현실적 해찰 경험이 있다. 어린 날, 엄마를 따라 이웃 마을에 가다가 앙증맞게 핀 제비꽃을 돌아보다가 넘어져 무릎을 깼다던가?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에게 갖다 주려고 물주전자를 들고 가면서 미꾸라지에 홀려 물을 쏟아 혼난 일들은 모두 해찰을 한 탓이다.
그렇다면 해찰이 말 그대로 ‘쓸데없는 짓일까?’ 심부름 다녀오는 아이가 해찰부리는 것은 십중팔구 자신이 심부름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른 일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해찰부리지 않으려면 다른 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고, 재미난 일을 재미난 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맡은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길가에 핀 꽃들은 아이의 시선을 빼앗아가고, 나풀거리는 나비에게도 정신을 팔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호기심과 관찰력을 다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호기심이나 관찰력이 없는 아이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직도 해찰이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면보다도 부정적인 의미가 더 크디. 그렇다고 상관할 것은 없다. 해찰을 부린다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일을 발견했거나 뭔가 혼자 놀 거리를 찾았다는 뜻은 아이의 장래에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해찰을 부릴 때 자기도 모르게 멋진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것은 뇌의 신비이자 뇌만의 고유영역이다. 뇌의 부활성화는 창의성을 생성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해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오히려 뇌의 활동을 막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스로 해찰을 부리며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뇌를 새롭게 깨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악기 다루는 게 서툰 사람은 일부러 악기를 만지작 거려보고, 그림에 문외한 사람은 그림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뇌는 놀랍도록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범이나 틀이 아니라 해찰이다. 우리는 온통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해찰부릴 자유와 심심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요즘에 사는 게 우리들이다. 태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둠 속에서 해찰해야 하고, 애기똥풀이 어떤 꽃인지 알기 위해 자연 속에서 해찰을 해야 하고, 촛불의 힘을 알기 위해서 촛불시위에 참여해 봐야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해찰解察을 자주 해라.

/정성수
전주비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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