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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황제를 버린 절개, 山高水長(上)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9.19 19:17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친구요? 왕에게는 친구가 없습니다. 오직 추종자와 적만이 있을 뿐입니다.” 영국왕 헨리 5세가 즉위 초 친구인 존 폴스타프에게 군의 총지휘관이 되어 줄 것을 제의하자 그가 한 말이다. 혹시라도 자기 욕심에 넘어가 군주를 배신하게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 자신만의 방책이었다. 친구이기에 온갖 어려움에 의존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많은 신임과 과도한 권력의 위임으로 분열과 불신을 초래하고 마침내 피를 부르게 됨을 알았기에 단호하게 잘라버린다. 왕은 매우 섭섭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부왕의 숱한 전쟁과 살육을 보아왔기에 그를 닮고 싶지 않았고, 모략과 배신의 궁정이 싫었기에 궐 밖 뒷골목의 술집과 그곳 부량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의식적으로 도피 생활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왕의 갑작스런 병사와 함께 본격적인 시련의 시간이 찾아온다. 암살자를 보낸 프랑스를 공격해야 하느냐의 결단이었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들고 무거웠다. 그를 분담할 친구가 필요했다. 기대면 결국엔 친구에게 휘둘리기 마련이다. 이때 이재에 밝은 대법관 윌리엄은 “국민과 적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저는 할 말이 있을 때만 말을 합니다. 주위 전사들이 자신을 위해 일을 꾸미는 것을 수없이 봤습니다.” 군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에게 의존해서는 안 됨을 깨우치기 위한 폴스타프의 말이었다. 전쟁은 가벼운 명분 싸움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되며 크나큰 희생은 언제나 군주의 몫이었다. 윌리엄의 말을 따라 “Make it England!”를 외치며 전쟁을 통해 왕의 품격을 보여주려 결심한다. 100년 전쟁 중 영국이 프랑스를 침공한 소위 ‘아쟁쿠르전투’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짐도 내일 죽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너희가 그 하나 된 왕국이란 것이다. 너희 하나하나가 잉글랜드이고 잉글랜드는 너희다. 너희 사이의 공간도 그렇다. 자신이 아니라 그 공간을 위해서 싸워라. 그 공간을 메워라. 조직이 되고 덩어리가 되게 하라. 뚫을 수 없게 하라. 너희들의 것으로 만들어라. 잉글랜드로 만들어라. ~(중략)~ 우리는 전우이며 오늘 함께 피 흘리는 자는 나의 형제다.” 병사들에게 이렇게 외쳤지만 수적 열세와 퇴각을 원하는 참모진의 건의에 왕은 흔들린다. 이때 친구 존이 획기적인 제안을 한다. 밤새 내린 폭우로 무거운 철제 갑옷이 젖고 진창이 되어 기동력이 떨어진 프랑스군을 가벼운 전투 복장으로 기습하자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주효했고 마침내 영국군은 대승하게 된다. 패전국 프랑스의 공주 캐서린을 아내로 취하지만 친구 존을 잃고 만다. 국민적 환호 속에 왕의 품격을 드높였음은 물론이다. 잉글랜드 왕가의 정통성을 굳건히 세움과 동시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이며 영국 기사도 리더십의 대명사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캐서린으로부터 프랑스는 암살자를 보낸 적이 없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모든 것은 윌리엄이 꾸민 계책이었음을 깨닫는다.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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