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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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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 세도 없이 살림을 차렸다. 시계추가 멈춰버린 안방에는 거미 왕국을 지었고 처마에 튼 신혼 방 참새 한 쌍 바지랑대에 앉아 새끼 밥을 나른다 대추나무 가지 타고 지붕 오른 늙은 호박 가부좌를 틀었다 아버지 좋아하시던 토란 깨국 끓이려 학돌에 숭숭 갈아 이탈한 깨알들 장독대 귀퉁이 에 웃자란 긴 세월 어머니대신 깨 밭을 일구었다 앞마당 풀밭에는 쓰르라미 귀뚜라미 백병전을 치르는데 아마도 목청 큰 녀석이 이길 것 같은 그믐달의 밤, 곰삭은 담장과 헐벗은 감나무가 마냥 웃고 있다 정지문 여는 소리 여직 살아있어 한 발짝 안으로 내딛자 찌그러진 양은냄비 아, 어머니, 어머니가 웃고 있다 부엌으로 달려와 김이 오른 저녁 밥상 금방이라도 차려올 것 같은 초저녁, 찬장에 아껴둔 빈 접시들 언제 다시 쓰려 했을까 거미줄에 묶여버린 어머니의 시간들을 밀어 넣고 마지막 정지문을 꼭꼭 닫았다.
내일은 굴삭기 온다 빈집이 싸늘하다. -박병윤「빈집」 전문
요즘 늘어나는 빈집을 철거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그려낸 시이다. 빈집에 배인 어머니의 삶 하나가 사라지겠다. 최근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촌에는 빈집이 늘어난다.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8%에 해당하는 약 151만 채에 달한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 ‘삼시세끼’ 등 작은 체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특히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작은 커피숍이나 주말 쉼터, 작은 책방, 삶의 공간으로 가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는 내년부터 시행할 고향사랑 기부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태어난 고향, 마음의 고향에 기부하면 기부금의 30%를 해당 지역 특산품이나 체험, 서비스, 문화 상품 등을 받을 수 있다. 문학인들에게 대단한 희소식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지자체에 기부하고 숙박 또는 문화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또 지역 문학인이 일군 시, 소설 등의 작품과 무대가 멋진 상품이 될 수도 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 시 속의 무대에서 민박을 체험하고 최명희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에서 윤흥길의 ‘기억 속의 들꽃’ 길에 쥐바라숭꽃을 찾아보고 BTS가 다녀간 명소 길에서 한옥 체험을 맛볼 수 있겠다. 한달살이, 일주일살이를 통해 문학 체험을 할 수 있다. 텃밭 상추, 오이, 풋고추에 강된장으로 차린 밥상은 온갖 풀벌레 소리와 맑은 밤하늘을 담은 위대한 밥상 예술이다. 글을 수확하러 마음의 고향에서 붓을 들어보자. 홍시 열린 풍경소리와 그 가을의 언저리에서 소박한 평상에 앉아 밥상머리 둘러놓고, 함께, 단 며칠이라도, 마음의 고향으로 가보자.
/박병윤 시인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