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단서 - 이성환
실바람에도 흔들린다. 손쉽게 꺾일 만큼 연약하지만 제 뜻을 굽히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팔짱을 끼고 엮이면 쉽게 떼어 낼 수 없는 힘받이가 된다. 사물을 지탱하고 뭇 생명에게 도움을 주는 자들의 위대한 힘이다.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짚신이나 똬리, 달걀 망태가 눈길을 끈다. 메줏덩이를 매단 서너 가닥 지푸라기나, 쌀 한 섬이 거뜬히 담기는 가마니가 새삼스러운 느낌이 든다. 짚풀을 꼬고 엮는 손재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지 싶다.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 미약한 몸피가 어떻게 무거운 것을 받아들이고 지탱할까. 약하고 허름한 것이 칡 줄기처럼 실하게 되는 동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얼핏 보면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아 있다. 사물의 중심이 아닌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몸뚱이가 빠져나간 거죽이나 열매가 없는 쭉정이, 속이 텅 빈 깡통처럼 실속이 없다. 허리가 베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순간, 목숨은 끊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생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산소와 수분이 부족한 육신일망정 희미하게 남은 숨결을 부여잡고 제2의 삶을 산다.
지푸라기는 지푸라기 그 이상의 존재다. 액운을 물리치기도 하고, 훌륭한 발효 재료이기도 하며, 진흙과 함께 섞이면 단단한 흙벽돌이 된다. 집을 지을 때는 요긴한 자재가 되어 비바람을 막아 준다. 볏짚이나 억새로 엮은 이엉으로 지붕을 덮으면 천연 단열재를 사용한 아늑한 가옥이 된다.
한 가닥의 지푸라기가 모이고 합쳐지면 마법 같은 힘이 생긴다. 전라도 일대의 전통 고싸움놀이의 ‘고’를 제작하는 데 볏짚 수백 다발이 든다. 짚을 다듬고 세 사람이 달려들어 나누어 쥐고 꽈배기처럼 새끼줄을 꼬아 간다. 가느다란 한 가닥 지푸라기가 여럿 뭉쳐서 늘어난 중력을 감당하게 된다. 커다란 현수교懸垂橋를 지탱하는 케이블선 역시 가느다란 소선(wire) 수십 개를 묶어서 사용한다. 가는 선들이 모여 거대한 교량을 지탱하고 적절한 장력張力을 유지한다. 여리기 짝이 없는 줄이 하나 둘 모여 단단한 줄로 거듭난다.
새끼줄을 보니 젊은 날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무학無學에다 직업 전선에 필요한 재주는커녕 변변한 기술조차 없었다. 가까스로 잡은 생계의 끈은 친척집에서 운영하는 수산물 소매업이었다. 오전에는 굴비를 짚으로 묶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굴비를 팔았다. 그때가 내 나이 서너 살 되던 무렵이라고 들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가 지푸라기로 굴비를 엮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바닥에 걸터앉아 염장된 참조기와 짚단을 옆에 두고 시래기 엮듯이 엮었다. 여러 가닥의 짚을 다듬고 나서 아래쪽을 한 가닥으로 묶은 후, 줄 사이에 조기를 끼워 넣었다. 짚 가닥의 절반을 접거나 교차시켜 가며 조기가 뒤틀어지지 않도록 고정시켰다. 몇 가닥의 지푸라기에 생선들이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친척집 헛간 천장에는 굴비 두름이 마치 아버지의 예술 작품인양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의 생업 현장을 다시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하굣길 버스 속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버스는 술집과 식당이 많은 번라한 거리의 정류소에 잠시 정차했다. 그때였다. 낯익은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빛바랜 남방셔츠와 후줄근한 바지를 입은 아버지였다. 양손에는 굴비 두름이 들려 있었고, 길가 식당을 쭈삣쭈삣 기웃거리고 있었다. 문 앞에서 식당 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떨이로 싸게 팔겠다는 흥정으로 짐작이 되었다. 잠시 후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생물이 상하기 전에 팔아야 한다는 초조감과 하루 벌어 여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학창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꼰 지푸라기의 힘으로 여물게 되지 않았을까. 세파에 흔들리며 지푸라기처럼 살다 간 아버지의 삶이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당신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비바람과 된서리를 맞으면서 자식을 위해 한평생 고개를 숙여야 하는 가장의 어깨. 늘 당당해 보이려 애썼지만 각다분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 쓰디쓴 좌절은 아버지를 길바닥에 주저앉혀 멍하게 넋을 놓게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다시 헐렁해진 굴비 두름을 옥죄었을 것이다. 가는 새끼줄 같은 자신보다 동아줄처럼 단단하게 자라날 자식들이 희망이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아버지의 가난이 반갑지도 않았지만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에게서 어떤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배웠다. 내가 객지에서 홀로 주경야독하며 야간 대학을 마친 것도, 은행에 취업하여 장기근속하고 퇴직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몸소 깨우쳐 준 삶의 의지와 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 우연히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나를 더욱 분발하게 했을 성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 번쯤 견딜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고, 십 원짜리 동전처럼 사람들 발에 짓밟히기도 한다. 곤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고뇌의 순간이 누군들 없겠는가. 그럴 때마다 서러움과 울분이 북받쳐 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물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절망하기 보다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의 단서를 찾아내야 하는 법. 세상에 쓸모없는 풀이 없듯이 괜히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초개草芥라 하여 괄시할 일은 아니다. 하찮은 풀에 불과하지만 꿋꿋한 절개가 있다. 곡식이나 들풀은 바람에 맞서 몸을 숙이며 저항한다. 누군가에게 짓밟히면 곧바로 응전 태세를 갖춘다. 직선은 쉽게 무너지거나 부러지지만, 곡선은 유연하게 휘어질망정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밀림의 맹수들도 말벌이나 불개미가 떼를 지어 달려들면 견디지 못하고 줄행랑을 친다. 보잘것없는 미물들이 작심하고 덤비면 맹수보다 더한 공격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작고 약한 게 크고 강한 것을 이기는 비결은 서로 뭉치는 힘이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그 일생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지푸라기는 억척스럽고도 끈질기게 살아내는 민초의 모습을 닮아 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도 꿋꿋이 제 역할을 다하고, 이제는 노후의 끄트머리에 이른 몸. 늙고 쓰임을 다하면 불쏘시개가 되어 아궁이에서 혹은 봉홧불로 제 육신을 보시한다. 자신의 온몸을 태우고, 어둠을 밝히며 고고히 산화한다.
검불이나 지푸라기인들 전성기를 누린 적이 왜 없었으랴.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을 때가 호시절이었다. 자연이 틀어주는 선율에 맞추어 탄력 있는 몸매를 흔들던 억새의 시절, 철사처럼 질긴 줄기로 서로 어우러져 태풍을 견뎌내며 생의 의지를 피워 올리던 시절, 마침내 알곡을 맺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던 벼의 시절도 있었으리. 어쩌면 지푸라기는 또다시 푸르고 찬란했던 그의 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