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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칼럼-˝책 읽지 않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4.03 16:58 수정 2025.04.03 04:58


이경재
독자권익위원
전주대 교수, ‘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저자

한 학생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충격과 슬픔 속에서 ‘맘 잡고 공부나 해야겠다’며 책을 펼쳤지만, 머릿속엔 온통 그녀 생각뿐. 그런데 TV를 켜는 순간 이별의 아픔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 깔깔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처럼 TV 오락프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단순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만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마비시키고, 우리를 수동적인 소비자로 만든다. 예전부터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독서를 할 때 우리 두뇌는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TV 오락프로를 보거나 단순한 게임을 할 때는 뇌의 활동이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지난해 겨울, 필자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춥고 귀찮아서,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시, 소설, 각종 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편하게 누워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들었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아예 그런 책을 들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졌다. 물론 눈으로 읽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지만 수동적으로 들은 책들은 훨씬 더 빠르게 사라졌다. 결국 책은 편하게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서 속도에 맞춰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며 직접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쉽게 얻은 지식은 쉽게 사라진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본 순간은 재미있지만 금방 잊히듯, 생각 없이 흘려들은 정보 역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책을 책상에 앉아 읽는 것이 귀찮더라도, 그렇게 직접 머리를 써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사고력과 판단력이 길러져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젊은 세대들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 창의적인 인재가 되고 싶다면, 영상 매체 중독에서 헤어나, 때로는 머리를 쥐어짜며 책을 정독해야 한다.

가짜 뉴스와 편향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사고력, 판단력을 키울 독서 문화 확산 절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더 독서에서 멀어지고 있다. 전국의 공공도서관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이나 독서 프로그램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지역의 작은 서점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예산 삭감으로 인해, 책방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네 책방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공간이다. 또한 북 토크나 독서 모임 등을 통해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하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 찾는 이들이 많지 않고, 책 한 권을 팔아도 3,000~4,000원의 이익밖에 남지 않아 월세 내기도 벅차다. 몇 십 년 동안 사랑받아온 동네 서점들이 폐업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종종 들려오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지역 서점과 공공도서관 지원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곧 인문학의 위기이며, 이는 사고력, 판단력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가짜 뉴스와 편향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독서 문화 확산과 자기성찰을 위한 인문학 교육의 확대가 더욱 절실하다. 지역 서점과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독서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독서는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영상도 좋지만, 가끔은 책을 펼쳐 머리를 써보자.
오늘, 책 한 권 어떨까?
(econo@jj.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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