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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칼럼-산불이냐 탄핵이냐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4.06 16:22 수정 2025.04.06 04:22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탄핵이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별로 어감이 좋지 않다. 탄은 총탄을 연상하게 하고 핵은 북핵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두 단어가 합쳐지면 이 세상 무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핵폭탄이 되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고 평화만을 추구하는 나라로 자부해 왔다. 그러나 어느 역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980여 회의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는 약소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침략 대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오랑캐의 속국으로 지냈던 쓰라린 과거와 남해 바다의 해적질로 이골난 왜적들의 잦은 침범이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을 합치면 그런 숫자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근세에 들어서만도 외세에 어두웠던 조선조 말의 허약함이 그대로 노출되어 대한제국이라고 허장성세를 뽐내봤지만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아픈 상처를 안아야 했다. 그나마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덕분에 독립을 되찾았지만 미쏘 국제정치의 여파로 남북으로 갈라진 것은 천추의 유한이다. 더구나 북한의 남침으로 전 국토는 초토화되고 세계대전을 능가하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우리를 압박했지만 한국은 기사회생하여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경제적 과학적 성과였다. 정치적으로도 이승만 독재를 4.19혁명으로 뒤엎고 박정희와 전두환에 의한 유신 군사독재도 30년 만에 쫓아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이 나라에 언제부터인지 독버섯처럼 자라난 이념투쟁이 이제는 막바지를 향하여 치솟아 오르고 있다.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 상황이 전개되어 온 남미의 행태를 꼭 닮은 꼴이 되었다. 걸핏하면 탄핵으로 정부와 국회가 사법부의 판단에 좌지우지되고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국민의 선거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된 사람들에 의해서 자기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는 현상은 정상적이 아니다. 물론 형사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정치적 사안을 사법부에 맡기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치욕으로 알아야 할 사항 아닌가.
지금 이 나라는 탄핵의 나라다. 거대 야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통령부터 정부 고위직까지 탄핵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국회에서 탄핵이 되면 헌법재판소의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업무가 중단되는 유죄 추정이 적용되어 권한대행의 대행까지 나온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직 대통령 탄핵은 선고 날짜도 미정이지만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 9명은 모두 ‘기각’으로 선고되어 업무에 복귀했다. 그들이 한가하게 집에서 쉬면서 월급만 타 먹었으니 대행들이 애를 썼겠지만 국력의 낭비는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1기 대통령일 때 하원에서 탄핵되었으나 대통령 업무를 그대로 수행했고 상원에서 기각되어 다시 복귀했다. 업무중단과 같은 몰지각한 제도가 없기에 가능했다.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탄핵되어야 한다. 그러나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는 업무수행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될 것이다. 혐의가 있어 소추된 사람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탄핵에서만 이를 제외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탄핵으로 찬반이 갈려 국론 분열이 자심(滋甚)한 판에 따뜻해진 봄볕을 시기라도 하는 양 갑자기 불어온 센 바람이 경상도 일대를 뒤덮어 국립공원 지리산과 주왕산까지 불에 타는 미증유의 재해가 발생했다. 천년고찰도 소실되고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도 위협을 받았다. 산청에서 시작한 불길은 의성 영덕 안동을 거쳐 전북 무주까지 두려움 없이 전진하여 재해 사상 최대의 면적을 태웠다. 이런 경우 흔히 축구장 몇 개의 크기로 비유하여 보도되지만 이번에는 축구장으로는 어림도 없고 서울 면적의 몇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림청이 주가 되어 산불 진화대원이 총동원되었지만 사망자만 28명이고 실종자와 부상자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처지다. 집과 농지의 피해는 아직 집계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불난 지 열흘이 되어서야 주불이 잡혔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지만 두껍게 깔린 낙엽 더미의 맨 밑바닥은 아직도 잔불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소방 당국의 세심한 대책이 고심을 거듭한다. 이번 산불에는 산림청은 물론이요 소방과 경찰, 지자체, 일반 공무원, 군인, 그리고 시민단체 등 까지 국민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진화에 진력한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시민정신의 발휘였다. 미군 헬리콥터의 지원도 큰 도움이었다. 많은 시민들과 기업들이 자진하여 성금을 기탁하고 있어 이재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이재민들에 대한 구호사업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먹고 잠잘 수 있는 주거가 시급하다. 다행히 봄과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이어서 혹한은 면하겠지만 이재민의 가슴은 혹한보다도 더 차가운 실정이다. 모든 국민이 “내가 바로 이재민이다”라는 생각을 함께 해주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밀어닥친 산불과 탄핵의 소용돌이를 하루빨리 극복하여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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