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 김제시 성덕면 개미마을 주민들은 그 어떤 제도적 권리 없이 살아왔다. 산림 정비라는 이름 아래 보상도 없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났고, 공동묘지 아래 야산 자락에 움막을 짓고, 척박한 땅을 일구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법적으로는 국유지 불법 점유자였지만, 실상은 국책사업에 의해 삶터를 빼앗긴 강제이주 피해자들이었다. 이들이 이제야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과 땅을 되찾았다.
김제시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정에 따라 개미마을 주민 17명에게 공유지였던 주택 부지와 농지를 매각했다. 감정가에서 30% 감액된 가격에, 주민들은 마침내 등기부등본 위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 누군가는 “살면서 내 땅을 가질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50년을 버텨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말엔 억울함, 회한,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무엇보다 ‘내 땅’이라는 한마디는 단순한 소유권의 회복이 아니라, 자신이 이 땅 위에 존재한다는 최소한의 존엄과 자긍심의 회복이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공유재산 매각이 아니다. 반세기 동안 제도 밖에 방치되어 있던 이들에게 ‘사람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삶의 자리’를 되돌려준 역사적 복권이다. 김제시와 국민권익위원회의 협력, 산림청과 정치권의 현실 인식이 어우러진 결과이며, 이 같은 사례는 전국의 유사한 상황에서도 참고할 만한 행정 선례로 남을 것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지금의 토지 환원이 진정한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들이 여생을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남은 숙원 과제들이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한다. 대부분이 70~80대 고령자인 이들에게 마을 경로당은 단순한 여가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이며 생애 마지막 보금자리다. 또한, 화전민 기념관은 이들의 고단한 삶과 50년 투쟁의 기록을 후대에 전하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이 될 것이다.
김제시는 이미 마을 진입로 확장, 농로 포장 등 생활 기반 개선에 힘써왔다. 이러한 노력은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이제는 근본적인 ‘공간의 복원’이 필요하다. 경로당과 기념관 조성은 단지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를 존중하고 역사를 기억하는 사회적 책무다.
이를 위해 김제시뿐만 아니라 전북특별자치도, 산림청, 국회가 긴밀히 협력해 지속적인 행정적·재정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특히 지역 정치권은 일회성 성과에 머물지 않고, 주민 개개인의 사정을 살핀 실질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의지와 중앙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맞물릴 때 비로소 ‘정의로운 회복’은 완성된다.
이번 개미마을 사례는 우리 사회가 개발과 성장, 보존과 정비라는 이름으로 놓쳐왔던 ‘사람’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반세기 전,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터전을 빼앗겼던 이들은 오랫동안 침묵당한 채 살아왔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목소리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제 개미마을은 매우 중요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한 세대의 투쟁과 인내, 공동체의 연대와 회복이 이뤄낸 값진 변화는 ‘사람 중심 행정’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 땅은 더 이상 ‘불법 점유지’가 아니다. 이제는 그곳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사람의 이름으로, 사람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로. 김제 개미마을의 오늘이 정의로운 내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