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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성수의 시 감상 <삶은 이별의 연습>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7.10 17:16 수정 2025.07.10 05:16

 
삶은 이별의 연습 - 오은경

뭉개진 안개 속을 걷는다
희미한 빛 너머 나는 여전히 영원을 꿈꾼다
꽃은 피고
잠시 반짝이다가 끝내 시들고
강렬했던 빛도 서늘해진다

단풍이 내려앉고 매서운 추위는 칼끝을 거두며, 계절을 바꾼다. 이별 뒤 마주한 또 다른 얼굴의 시간.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엄마 품에 안긴 채 세상은 포근했지만, 유치원 문 앞에서 처음 이별을 배웠다.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 목 놓아 울던 그 날. 작은 손이 떨리던 순간이,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이젠 몸 이곳저곳 삐걱거리고, 미슐랭의 유혹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삶에 묻혀 사라진 꿈과 열정이 가끔 가슴 속에서 울부짖기에, 나는 펜을 놓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아무리 연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상처,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접고 접어도 찢긴 슬픔의 가장자리
그 조각 하나가
오늘도 명치끝을 아리게 한다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나는 끝나지 않은 이별 중에 있다


□ 정성수의 詩 감상 □

시「삶은 이별의 연습」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이별의 순간들을 성찰하며,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싶은 ‘영원’에 대한 갈망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은 뭉개진 안개와 희미한 빛 속을 걷는 이미지로 시작해, 삶이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흐릿한 여정임을 암시한다. 꽃이 피고 시드는 자연의 순환은 인간의 삶과 감정을 투영하며, 반짝이는 순간조차 결국은 소멸의 운명임을 조용히 일러준다.
유년의 첫 이별인 유치원 앞의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세상의 포근함에서 홀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작은 손이 떨리던’ 경험은 삶의 초기 기억으로서, 이후 반복될 수많은 이별의 전조이자 은유이다.
시인은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삐걱’거리는 현실, 그리고 한때 품었던 꿈과 열정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존재의 허무를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펜을 놓지 못한다’는 진술은, 삶의 무게 속에서도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반복해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아픔으로 묘사된다. ‘접고 접어도 찢긴 슬픔의 가장자리’라는 표현은 마음속에 남은 상처가 얼마나 지워지기 어려운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며, 그 조각 하나가 ‘명치끝을 아리게 한다’는 구절은 고통의 현실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별은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고통이자,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이다.
결국 이 시는 이별의 반복이 곧 삶이라는 통찰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고 기록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조명한다. 끝나지 않은 이별 속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절망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찾아가는 존재의 슬픔이자 위로로 다가온다. 이별을 통해 삶을 배우고, 그 이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잔잔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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