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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공중보건의 붕괴, 농촌의 생명선이 끊어지고 있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8.20 12:24 수정 2025.08.20 12:24

전북 지역의 공중보건의 수가 10년 새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2014년 242명이던 인원이 지난해 말 118명으로 줄었다. 지난 4월 복무를 마친 인원이 100명인 반면 신규 선발은 67명에 그쳤다. 그 결과 146곳의 보건지소 중 실제로 의사가 배치된 곳은 49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97곳 중 73곳은 순회진료로 운영되고 있으며, 24곳은 사실상 진료가 중단됐다. 이는 단순한 인력 감소 문제가 아니라 농어촌 주민들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회적 위기다.
공중보건의 제도는 1979년 도입된 이후 농어촌과 의료 취약지역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군복무 대신 지역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구조 덕분에, 적어도 ‘의사 없는 마을’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과대학 정원 제한, 전공 기피 현상, 도심 쏠림 현상 등이 겹치면서 이제는 제도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의 시선은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향하고, 농촌의 진료소는 점점 문을 닫는 것이다.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농촌과 고령화 지역 주민들에게 보건지소는 단순한 진료 기관이 아니라 ‘생명선’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갑작스러운 고혈압 발작이나 당뇨 합병증에 시달릴 때, 가까운 보건지소가 없다면 대형병원까지 한참을 이동해야 한다. 자칫 골든타임을 놓쳐 생명을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농촌 주민들이 도시민보다 심뇌혈관질환,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공중보건의 인력 부족을 단순히 ‘의사 수급 불균형’ 탓으로 돌린다면, 농어촌 의료는 돌이킬 수 없는 붕괴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먼저 공중보건의 충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농촌 의료 인력 확보를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일정 비율의 정원을 지역의무 복무형으로 선발하고, 복무 기간 동안 합당한 처우와 전문적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공중보건의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촌 의료가 군복무 대체인력에 기대는 현실은 언제든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국립의료원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농촌을 지킬 의사’를 제도권 안에서 안정적으로 배출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의료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의사 배치가 불가능한 지역은 최소한 원격진료와 간호 인력을 통해 기본적인 의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전북에서도 일부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은 장비와 인력 모두 부족하다. 정부는 규제 개선과 예산 투입을 통해 농촌형 디지털 의료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지금 전북의 현실은 전국 농어촌이 직면할 미래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겹치는 상황에서 의료 공백은 가장 먼저 농촌의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 균형 발전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한쪽에서는 ‘과잉 의료’를 걱정할 정도로 의사와 병원이 몰려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 난민’이 속출하는 불평등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농어촌은 대한민국의 식량 주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곳의 주민들이 최소한의 건강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전북의 공중보건 기반 붕괴는 단순한 지방 문제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지금 당장 국가적 차원의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의료 공백을 메우는 일은 곧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국가 균형발전을 지탱하는 일이다.
공중보건의 붕괴는 ‘의사 부족’이라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권과 직결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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