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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K-농업’의 그늘,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외면한 대가는 크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12.21 11:58 수정 2025.12.21 11:58

전북 지역 한 돈사에서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폭행·폭언 사건은 결코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한국 농업의 경쟁력과 도덕성을 동시에 떠받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과 안전한 축산물 생산을 외치면서도, 정작 현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의 존엄을 외면해 온 구조적 모순이 이번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전북은 명실상부한 농생명 산업의 중심지다. 그러나 농촌 고령화와 청년층 이탈로 인해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농업과 축산업을 지탱하는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축사 관리, 사료 공급, 분뇨 처리, 농산물 수확과 선별 등 고된 작업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몫이다. 이주 노동자가 없다면 농업 생산 체계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이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일부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나 ‘통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폐쇄적인 농촌 환경과 언어 장벽, 정보 부족은 인권 침해를 은폐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특히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까다로운 구조는 노동자의 협상력을 극도로 약화시킨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문제 제기 자체가 곧 생계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침묵을 강요한다. 이번 폭행 사건은 드러난 일부 사례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인권 침해는 단순한 윤리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세계 시장에서 ‘K-푸드’와 ‘K-농업’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생산 과정의 인권 기준은 더욱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비인도적인 노동 환경이 국제사회에 알려질 경우, 농산물의 신뢰도와 수출 경쟁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선진 농업은 기술과 생산성 이전에 인간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 농업의 동반자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전환이 절실하다. 다문화 이해 교육과 지역 차원의 상호 존중 문화 확산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는 고용허가제 개선을 통해 사업장 변경 요건을 현실화하고, 인권 침해 신고 창구의 접근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농축산 현장의 특성을 고려한 불시 근로감독과 통역 지원 역시 필수적이다.
나아가 가해자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복적인 인권 침해 사업주에 대해 외국인 고용 제한 등 실질적인 제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농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보호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그들의 노동 위에 세워진 농업이 진정으로 ‘K-농업’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부끄러운 현실을 직시하고 구조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농업만이 지역 농촌의 미래를 살리고, 한국 농업의 신뢰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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