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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남이 부럽지 않은 이유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12.22 15:16 수정 2025.12.22 03:16

유인봉 시인 / 수필가

‘부러우면 진다’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별로 부러워할 것도 없고 원망할 일도 별로 없다. 일상도 남과 별반 다르지 않고 평범하다. 특별한 일 없으면 우리 가족은 가까이에서 사는 아들 가정과 주 1회 정도는 저녁을 같이 먹는다. 대부분 주일 예배 마치고 저녁은 우리 집에서 함께 하는 편이다. 항상 집밥은 아니다. 가끔은 외식도 하는 편이다. 식사를 하면서 한 주간 삶의 영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근처 사는 아들은 몇 해 전부터 조그만 조경 설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소박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요샛말로 애국자다. 경제적으로는 저축할 여력이 거의 없는 박봉 셀러리맨이다. 그렇지만 아들 내외는 한 번도 자신의 처지나 형편에 대하여 궁색한 말이나 불평을 말하거나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표정도 늘 밝고 얼굴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다.
지난 연말쯤 저녁 자리였다. 아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연말모임이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 중에는 의사도 있고 대기업 중견 간부도 있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고 했다.
서울의 모병원에서 소속 월급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소개하면서 월평균 2천만 원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졸업하고 곧장 삼성그룹에 입사해서 지금은 중견 간부가 되었다고 한다. 고시에합격하여 중앙부처 과장으로 일하는 친구도 있다 했다. 아들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입학하고도 졸업장을 받아보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둔 지우고 싶은 기억과 상처가 많은 청년이다. 그 이면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여곡절과 사연이 무수히 많았다.
10여 년의 방황 끝에 아들은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 대학 동기들은 10년을 앞서가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과 대학 입학 동기라는 인연으로 아들은 지금까지 모임을 같이 하고 있다. 아버지인 입장에서 때로는 그런 아들이 속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상처가 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오기 차게 노력해서 돈을 많이 벌든가 아니면 사회적 지위를 갖춰 가야지 하는 속물적 욕심을 은근하게 가져 본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아들이 이런 고백을 한다. 삼십 대의 젊은 나이 때는 돈을 많이 받고 대기업 간부로 있는 친구들이 그리도 부러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빠, 저는 지금은 세상에 부러워할 것이 없어요. 전에는 돈 잘 버는 의사 친구나 대기업 간부 친구가 부러웠는데 지금은 전혀 부럽지 않아요.”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는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그리고 아이를 꼭 낳아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들은 지난날에 대한 자책도 후회도 많이 했을 것이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두고는 모두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돈 잘 버는 의사 친구, 그리고 사회적으로 출세했노라 할 수 있는 대기업 간부 친구가 부러웠을 텐데, 반면에 자신의 처지가 초라해 보였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아들의 입장을 헤아려 준다고 아버지인 나도 아들의 그런 예민한 부분들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나이 들어보니 그런 것들 다 별거 아니더라’라며 에둘러 말꼬리를 돌리기도 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들에 대한 그간의 내 생각은 크게 빗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머릿속이 맑아지고 가벼워졌다. 아들은 자신에게 돈보다 명예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 것이다. 그건 사람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족이고 사랑이었다.
가족 사이에 느끼는 기쁨과 사랑이 세상 성공의 잣대가 되어버린 돈과 명예를 뒷전으로 밀어낸 것이다.
돈과 명예라는 욕심과 욕망 때문에 한순간에 인생이 망가지고 죄인이 되는 실패 사례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옛말에 ‘가진 것이 많으면 짊어져야 할 짐도 무겁다’라는 말이 있다. 가볍고 소소한 일상에서 가까운 곳에서 감사해야 할 제목을 발견하고 기쁨을 누리는 일이 행복임을 생각하게 한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라 하는데, 그 행복을 찾아내어 깨워 보아야겠다. 거기에서 감사와 기쁨을 맛볼 수만 있다면 세상을 이긴자가 아니겠는가. 누가 부럽겠는가. 오늘따라 아들이 더 듬직해 보인다. 세상이 주는 유혹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중심을 보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종종 세상 욕망과 부러움에 질질 끌려 사는 연약한 나를 들여다본다. 아들이 더 커 보인다. 행복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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