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효순 수필가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글을 써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다. 어떤 책이 내게 제일 감동이었을까. 책을 읽고 감동 받는 것은 나이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책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서점안의 수많은 책을 보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굳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말하라 하면 나는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라고 대답을 한다.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나이 들어 IMF 경제위기에 처할 당시였다. 나 역시 농촌을 떠날까 하고 망설이던 시절이었다. 도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했지만 농촌은 더욱 희망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노력도 없이 무작정 떠나려 했던 자신이 무능해 보였다. 그리고 시설 하우스를 지어 겨울고추와 수박과 참외를 심어 그런대로 잘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1930년대 미국 대 공황기 중 주인공 조오드 일가는 탐욕스런 대 지주의 희생물이 되어 쫓겨나게 된다. 백만 에이커를 가진 한사람의 지주를 위해 십 만 명이 굶주려야 하는 비참한 현실에 조오드는 지주와 맞서 싸워 보지만, 그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트럭에 온가족을 싣고 이주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불모지인 캘리포니아에서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포기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만들어내는데 박수를 보냈다.
시대는 달라도 조오드가 불모지를 개척 하듯이 현시대 젊은이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부모에게 의지 하고 사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늘어간다. GDP가 발표한 우리나라 세계경제 순위는 현재 12위, 통계청은 10위라 한다. 한데도 실업자가 많은 이 시대에 한 번쯤 읽어 본다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젊은이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다시 책속의 조오드 일가는 장마에 폭풍우가 쏟아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 보다 더 소중했던 근처의 땅과 밭이 침수되어 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그들은 살기위해 무섭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을 뚫고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와야 했다. 그런 난리 속에서 조오드의 딸 로자샤안이 아기를 낳았지만 곧 아기는 죽고 말았다. 간신히 피신하여 들어간 헛간에는 굶어 죽기 직전의 50대 남자가 있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로자샤안은 망설임 없이 남자를 안고 퉁퉁 불어오는 젖가슴을 열었다.
책장을 덮고 한참 동안 가슴이 뭉클하여 눈을 감았던 기억이 새롭다. 죽어가던 남자는 농민을 대변하기도 하고 가난한 도시민을 대변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젖을 물리는 로자샤안은 누구였을까.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절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배고픔이다. 결국 작가는 가난한 사람들끼리 의지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현실을 말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 로자샤안처럼 가슴을 열 수 있는 사람도 결국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닌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점도.
한 권의 책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한 줄의 글 속에서도 힘을 얻게 되고 위로를 받는다. 대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가끔 수필을 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회의가 드는 날이 있다. 혹여 남을 나처럼 살라고 한 적이 없었는지.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르치려 들진 않았는지 걱정이 앞선다. 다만 몇 년 전 제주도에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내 수필집을 읽고 이름도 밝히지 않는 독자가 보내온 싱싱한 귤을 한 상자 받았던 고마움에 풀어진 마음을 다잡곤 한다. 누군가와 아주 작은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된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