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학교 폭력은 나이 어린 학생 사회의 보편적인 하나의 단면으로 치부되어 왔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범죄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나이 어리다고 해서 촉법소년이라면 아예 형법에서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처벌을 면할 수 있지만 학폭의 이름이 붙을 정도면 중학생 나이는 되어야 할 것이다. 촉법소년에 들어가는 어린이 중에서도 자기 나이에서는 처벌이 면제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무거운 범죄에 손을 대는 수도 있다고 한다. 당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처벌할 수 있도록 촉법의 나이를 낮추려는 여론 조성도 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는 듯하다. 초등학생 사이에도 힘이 센 학생과 약한 학생 간에 다투는 일이 생길 수 있으며 돈이나 물품을 갈취하는 폭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하물며 중학생 이상이 되면 체격 변화가 오고 머리도 커지며 떼를 형성하여 약한 학생을 골탕 먹이는 수가 빈번해진다. 요즘 사회적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학폭의 경우는 대개 이 때 생겼던 일로 보인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벌어졌던 학폭의 양상이 상당히 오랜 시일이 흐른 지금에 와서 폭로되고 있는 양상은 학폭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만들어 준다. 그 당시에는 힘이 좀 세다고 해서 약한 학생들에게 주먹질을 하고 금품을 갈취했다. 자기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학생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강자의 자기도취다. 물리적 폭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토론과 설득이 주요 수단이어야 할 정치 세계에도 이런 강자의 법칙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의 정치는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꺾어 눌러 지배하려는 정치적 강자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군사 독재와 문민정치에서도 그 양상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아직 토론과 설득으로 다른 학생을 다독이는 것보다는 힘을 앞세우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운동선수처럼 체력에 자신이 있는 학생은 힘을 과시할 수가 많다.
이는 남녀학생을 불문한다. 유명 배구선수, 농구, 축구 야구 등등 모든 운동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선수들이 과거의 학폭 행위가 폭로되면서 서릿발 같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현실을 대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자기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당사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오래된 옛 얘기를 구태여 폭로하는 사태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 영화배우도 그 중의 하나가 되어 은퇴를 선언하는 것을 보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일을 왜 그르쳤는지 아쉬움이 크다. 모든 잘못을 금전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의 일반적인 규칙은 잘못에 대한 보상을 금전적 보상으로 해결하고 있다. 선수건, 배우건 간에 스스로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다면 경제적 보상이라도 치러 피해자의 앙금을 달래줘야 하지 않겠는가.
2026학년도 대입 수시 전형에서 162명의 학교폭력 가해 전력(前歷)이 있는 수험생이 불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거점 국립대(총 10곳)가 정부 방침에 따라 금년도 대입부터 학생부 위주로 신입생을 뽑는 전형뿐 아니라 논술과 실기 등 모든 전형에 의무적으로 ‘학폭 가해 감점’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점 차이로 당락이 정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학폭 감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대에는 학폭 전력자의 지원이 없었고 나머지 9개 국립대는 가해(加害) 정도에 따른 기준을 교육부의 위임에 따라 알아서 결정했다. 그 결과 180명 중 강원대37명, 경상대29명, 경북대28명, 전북대18명, 충남대15명, 전남대14명, 충북대13명, 부산대7명, 제주대1명으로 나타났다. 지원자의 90%가 낙방의 고배를 마신 셈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립대의 경우에는 어떤 제약이 있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 국립대가 먼저 시작했으니 반드시 뒤따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되면 우수한 학생들이 일시적인 잘못으로 학폭 전력자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 그 후유증은 운동선수나 배우 몇 사람의 탈락과 다르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학폭을 과연 이런 방법으로 예방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사후 처벌일 수밖에 없는 ‘학폭 감점’은 교육의 진면목과는 거리가 멀다. 강을 강으로 다스리는 것은 하지하수다. 학생들에게는 교육이 우선이다. 우리에게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을 가르치는 커리큐럼이 없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강을 누르고 약을 도와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반복해서 주입시키는 교육을 해야 한다. 억강부약을 자신의 신념이 되도록 거듭거듭 머릿속에 새기게 되면 도와줘야 할 약자를 폭행할 수가 없다. 강자 약자 구분이 없어지고 사이 좋은 친구만 남을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