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효순 수필가
또 쓰고 말았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 해놓고. 원고를 넘기고 하루가 지났다. 왜 이렇게 허전할까. 꼭 무엇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창문을 열어보니 앞산에 떡가루 같은 눈이 얇게 깔려있다. 마음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갈 곳을 잃은 새 한 마리처럼 날고 있다.
음악을 틀어본다. 단테가 평생 사랑했다는 여자. 슬픈 베아리트제가 꽃상여를 타고 간다는 사중창의 애절한 음이 흐른다. 어머니는 꽃상여 대신 장례식장 리무진을 타고 가신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나는 어머니를 보내면서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백세를 넘기자 오빠에게서 전화가 오면 돌아가셨는가 하다가 아니면 그러기를 바라던 그렇게 몹쓸 딸이었기에 울면 오히려 죄가 될 것 같아서였다. 홀로 집에 계실 때나 찾아 볼 때도 궐 따지듯이. 요양원에 계실 때도 늘 또 숙제 하듯이 그랬으니 울 자격도 없었다. 사실 요양원 6년 동안은 어머니에게서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가엾은 노인이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지 않겠느냐고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끝내 가지 않았다. 무섭게 말라버린 모습을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가 영원히 눈을 감는 모습을 보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이리도 가슴 아플 줄이야.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어머니의 체온을 왜 포기 했을까. 잘 가시라고 고생하셨다고 왜 손잡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리하고선 지금 어머니가 그립다고 잘못했다고 운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무 장작같이 말라버린 어머니의 육신, 굽어진 다리하나 펴드리지 못하고 보냈으면서 왜 이제야 울고 싶은 것이냐고, 왜 이제야 소리쳐 울지 못한 내가 후회스럽다니 영정 앞에서는 실컷 울어도 되었는데….
이제야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며칠 전 유품 가방 안에서 조그만 지갑 속에 돈 삼 만원과 우리 형제자매 사진이 나왔다. 늘 볼 수 없는 자식들 사진을 꼭꼭 싸서 가방에 두고 살았던 어머니.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만나고 헤어지는 날은 늘 마음이 아팠다. 당신의 일생이 너무 슬퍼서 기댈 수 없는 사람, 슬픈데 웃어야 하는 당신의 얼굴이 싫어서 또 하나의 상처를 내고 가끔은 타인보다 더 매정하게 어머니 속을 긁어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바보. 나는 정말 하나밖에 없는 못난 딸이었다.
그래도 “어쩌다 너를 낳았을까 너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니?” 하면서 웃어주셨던 그 짧고도 긴 세월들이 이렇게 금방인 것을. 어쭙잖게 자유를 얻었다고 지인들에게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내가 정말 싫다.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어머니가 살았던 집에 가볼까. 그곳 어딘가에 아직도 어머니의 물건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든 이 지랄 맞은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봄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다. 봄이 왔나보다. 만물이 소생한다 했던가. 땅 밑은 이미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겠다. 어머니와 나는 정말 헤어졌는데 또 다른 봄이 꿈틀대는가. 이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어루만지듯 봄빛이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렇게 따뜻한 봄날 어디에서 어머니가 오래 살아 내가 힘들었다고 감히 말했던 못난 딸의 애증을 이해 받을 수 있을까. 멀거니 서있는데 발밑에서 누군가 속살거렸다.
“울지 말아요. 나도 작년에 헤어진 우리 엄마에게서 다시 태어난 봄까치 꽃이랍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조잘조잘 말을 걸어온다. 세상에서 어찌 당신만 그렇겠느냐고 작은 잎들을 팔랑거린다. 춥고 메말랐던 땅 어디에다 이리 고운 빛을 간직 했을까. 분명 작년에 난 꽃잎은 모두 사라졌었는데, 쭈그리고 앉아 꽃잎을 쓰다듬어 본다.
꽃송이에는
dm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 한용운 <꽃이 먼저 알아>중에서-
한세대가 가면 또 다른 세대가 오는 것이 ‘삶’이라고 바람이 나를 안고 지나가고 끝도 시작도 없는 자연의 이치와 삶과 죽음에 경계가 없다는 것을 이 작은 풀꽂은 또한 어찌 알려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