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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나의 서재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1.26 15:41 수정 2026.01.26 15:41

형효순 수필가

서재에 앉았다. 시월 보름달이 참 밝다. 서재는 젊은 날에 비하면 사계절 금상첨화다. 보름마다 달빛이 책상에 쏟아질 뿐만 아니라 앞산 소나무 숲에 눈이라도 쌓이면 고요하다 못해 쓸쓸하다. 환경으로 보면 글이 술술 풀려야 맞는데 글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참선하듯 앉아 있기 일쑤다. 그보다 원고마감이 모레인데 막막하여 그냥 앉아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는 서재인데도 매번 그렇다.
사실 서재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공부방은 언제나 오빠들에게 밀려 책상다운 책상 한 번 갖지 못한 채 방바닥에 엎드리거나 개다리소반을 놓거나 사과상자에 창호지로 사면을 발라 놓고 공부 했다.
칠남매 맏며느리가 되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재는 그만두고 넷이나 되는 아이들 공부방조차 마음대로 만들어 주지 못한 채 책상만 한방에 두었을 뿐, 어찌 보면 공부하라는 말조차 아이들에게 미안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니 서재라는 말은 책이나 TV에서 보았을 뿐 개인 서재가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마 아이들이 자라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은 부엌 식탁이었다. 그것도 입식 부엌으로 개조 한 덕분이었다. 젊었던 시절 농촌에서는 낮에 책을 본다는 것은 용납 할 수 없었다. 그런 여유를 누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가하다 해도 책속에서는 돈도 쌀도 나오지 않는다는 시부모님 지론이었다. 그 만큼 ‘밥’이 중요했다. 모두가 잠이 든 밤이라야 식탁 앞에 앉아 피곤과 잠을 쫓아가면서 글을 쓰며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달콤하면서 행복했던 곳이 낮에는 식탁이 되고 밤에는 글을 읽고 쓰던 부엌식탁 서재가 아니었나 싶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시부모님까지 돌아가시자 방이 남았다.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서재가 생겼다. 좀도리 쌀을 모아 맨 처음 장만했던 세계문학전집과 그동안 모인 책들을 책장에 정리하고, 책상에 노트북을 올려놓으면서 글이 저절로 써질 것 같아 설레기조차 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갖고 싶었던 서재인가.
오래전부터 기계화로 농사짓기가 많이 수월해 졌다. 시간이 없어 책을 못보고 글을 못 쓴다는 것은 핑계다. 글을 쓰고 책을 본다고 눈치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봐도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도 글은 예전처럼 잘 써지지 않고 책을 읽는 것도 게을러졌다.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니까 안한 다는 속담처럼.
서재는 점점 장식용처럼 조용해졌고 찾아오는 지인들과 차 마시는 공간으로 변해 갔다. 보내 주신 수필집과 시집들이 자꾸만 쌓여 간다. 여건과 시간이 되면 훨씬 좋은 글을 쓰고 읽을 것이라 생각했던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시댁에 들러 인사하듯 책들을 펼쳐보고 문을 닫는다.
내일은 꼭 동인지에 작품을 내야 하리라. 서재에 앉아 창밖을 보니 벌써 가을이 깊었나 보다 풀벌레 소리가 청아하다. 뒤안에서 나뭇잎이 두런두런 떨어진다. 투툭. 도토리가 떨어지나 보다. 저 홀로 농익음을 감추지 못하고 스스로 갈 길을 찾음이리라. 분명 내 인생의 가을도 깊었는데 무엇으로 깊이 있는 수필을 쓸 것인지 오늘도 해답을 쉬 얻지 못할 것 같다.
‘글은 홀로 쓰는 것 이다. 성은 다 같이 쓰지만 이름은 홀로 쓰는 것과 같다’는 연암 선생님 말씀만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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