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 고창경찰서 해리파출소 경사
며칠 전 파출소를 찾은 50대 후반 남성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텔레그램 대화창에는 낯설지만 호감을 주는 여성의 사진과 다정한 안부 인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여성 소개 관계자를 사칭한 상대는 “신원이 확인된 사람”이라며 남성을 안심시켰고, 외로움 속에 하루를 보내던 그는 점차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일을 가족이 알게 되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이었다.
수백만 원을 송금한 뒤에도 금전 요구가 반복되자 그는 사기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파출소 문을 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중장년과 노년층의 외로움을 파고드는 로맨스 스캠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오늘 신문을 펼치자, 로맨스 스캠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파출소에서 마주한 그 남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특정 개인의 불운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우리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로맨스 스캠은 연인이나 지인을 가장해 감정적 신뢰를 쌓은 뒤 금전을 편취하는 사기 범죄다. 피해자가 스스로 상대를 믿고 돕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특징이며,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기 쉬운 중장년·노년층이 주요 표적이 된다.
사기범들은 SNS와 메신저로 접근해 사진과 음성 메시지, 영상 통화까지 활용한다. 신뢰가 쌓이면 “함께 미래를 준비하자”라는 말로 가짜 투자 사이트나 허위 코인 거래로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위조된 신분증과 계약서, 조작된 수익 화면까지 제시되며 감정으로 시작된 관계는 투자 사기로 이어진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로맨스 스캠 피해는 313건으로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많은 피해자들이 자책과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망설이기 때문이다.
로맨스 스캠은 개인의 부주의로만 돌릴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고립과 급변한 디지털 환경이 맞물려 나타난 구조적 범죄다. 얼굴을 본 적 없는 관계에서 금전이나 투자 이야기가 나오면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럴 때는 혼자 판단하지 말고 가족이나 지인, 경찰에 즉시 상담하는 것이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