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가 ‘농생명 산업 수도’를 표방하며, 농업의 대전환을 꾀하고 있다. 스마트팜 혁신 밸리를 필두로 한 첨단 농업 인프라 구축과 AI 기반의 정밀 농업은 전북 농업이 나아가야 할 미래상이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 뒤에 가려진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렵다. 거대 자본과 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팜의 성장세와 달리, 전북 농업의 심장인 일반 영세 농가들은 고유가와 고임금, 그리고 기후 위기라는 삼중고에 갇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고유가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해 947억 원 규모의 민생 지원금을 긴급 투입하기로 한 결정은 가뭄 끝에 단비와 같다. 이 지원금은 농기계 면세유 가격 폭등과 비료비 상승 등으로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든 농가들에게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회성 지원금은 말 그대로 ‘응급처치’일 뿐이다. 농가 경영의 근본적인 구조를 개선하는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심화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전북자치도의 역량이 스마트팜과 수출형 고부가가치 작물에 집중되는 동안 대다수 고령 농가와 소규모 중소농들은 소외될 수 있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스마트팜 시설은 청년 창업농이나 규모화된 전업농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당장 내일의 인건비를 걱정해야 하는 영세 농가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첨단 농업이라는 이름의 ‘빛’이 강해질수록, 그 그늘에 가려진 전통적 농가들의 시름은 더 깊어진다.
균형 잡힌 지원이 시급하다. 첨단 기술 도입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중소농과 고령농을 위한 보호막은 현재를 지키는 생존 전략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해는 이제 일상이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은 상수가 됐다. 이러한 파고를 농민 개개인이 감당하라는 것은 행정의 방임이다. 스마트팜 육성에 들이는 정성만큼, 일반 농가의 생산비 절감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수립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 비용 절감형 농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기계 임대 사업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서 고가의 장비 구입 부담을 낮추고, 농업용 전기료나 면세유 보조금의 상시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고령화된 농촌의 고질적 문제인 인력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공급망을 지자체가 직접 관리하고, 인건비 상승분이 농가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않도록 하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보여주기식 대규모 단지 조성보다 농민들의 지갑을 지켜주는 생활 밀착형 농정을 지향해야 한다.
전북은 대한민국 식량 자급의 최후 보루다. 농업은 단순히 수익성을 따지는 경제 논리의 대상이 아니다. 식량 안보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략적 가치이다. 전북의 농민들은 그 가치를 지탱하는 최일선의 파수꾼들이다. 기술적 우위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다가 기초 농가들이 무너진다면, 전북이 꿈꾸는 농생명 산업 수도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농업의 대전환은 기술의 진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흙을 만지는 농민들의 삶이 지탱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농업 수도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북의 논과 밭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선이다. 그 생명선을 지켜내는 일에 예산과 행정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전북특별자치도가 도민에게 약속한 ‘함께 혁신하고 함께 성공하는’ 자치의 정신이자, 농도 전북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