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제46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자, 위대한 시민정신의 상징이다. 올해 전북지역 기념식을 밝힌 슬로건 '오월의 꽃 오늘의 빛'이 가리키듯, 1980년 오월의 잔혹했던 희생과 치열했던 저항은 오늘날 우리가 숨 쉬듯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인권, 평화의 뿌리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가치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전을 선언하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특히 17일 전북대학교 이세종광장에서 엄숙히 거행된 추모식은 우리에게 엄중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가 다름 아닌 전북의 아들 이세종 열사였다는 점이다. 이는 오월의 항쟁이 결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신군부의 불의한 권력 찬탈에 맞서 온 나라가 함께 피 흘린 전국적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다., 오래된 정치적 과제이자 시대적 명령인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한 이유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겨 넣는 일은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선거 때마다 주요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공언해 온 단골 약속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대국민 서약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개헌 논의는 번번이 정쟁의 늪에 빠져 표류했고, 정략적 계산 속에서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 국가적 위기와 급박했던 정세 속에서, 시민들을 지탱하고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아낸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정치권은 깊이 자성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헌정을 수호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불의한 국가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맞섰던 오월의 저항 정신이었다. 따라서 5·18 정신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일은 단순한 역사적 평가나 과거 청산을 넘어선다. 이는 대한민국의 법통과 민주적 가치를 확고히 다지고, 향후 어떠한 독재나 반헌법적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제도적 방파제를 구축하는 중차대한 국가적 대업이다.
나아가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도도히 거슬러 올라갈 때, 전북이 민중 자치와 평등 세상의 문을 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고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894년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어섰던 동학농민군의 전국적인 민중 항쟁은, 대한민국 헌법이 이미 계승하고 있는 3·1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으로 도도히 이어지는 근대 민주주의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이자,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가치를 아시아 최초로 실천했던 동학농민혁명이다.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하는 이 시점에, 우리 민주주의의 위대한 첫걸음이었던 동학 정신 역시 헌법 전문에 반드시 함께 새겨져야 마땅하다. 그것이 한국 민주항쟁사의 단절된 맥을 온전히 잇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완성하는 올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인은 이 역사적 과제에 대해 더 이상 모호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입장이어야 한다. 5·18 정신과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핵심 기둥으로 세우는 일에 전북의 정치권이 가장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고, 역사를 외면하는 헌법은 국민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더 이상 정파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개헌 논의를 미루는 직무유기를 멈춰야 한다. 동학에서 오월로 이어지는 숭고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헌법 전문에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실천적 이행과 개헌 발의 절차에 즉각 착수할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