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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요일별 특집

[온고을문학산책] 작은 보따리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1.04.07 19:26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쑥 향기가 집 안 가득하다. 엊그제 친정에서 가져온 쑥으로 쑥버무리를 만들었다. 깨끗이 씻은 쑥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살살 흔들며 옷을 입혀 푹 쪘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그 맛이 날지 궁금하다. 잘 익은 쑥버무리 한 덩이를 떼어 한 입 가득 머금었더니 내 맘 속에 고향 들판이 들어선다.
요즈음은 고향집을 자주 찾는다. 어머니가 계시는 포근한 안방이 그리워 주말이면 친정으로 향한다. 따뜻하게 밥상을 차릴 식단을 정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해 간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있었던 이웃들 얘기를 하면서 양념을 다듬어 주시고 나는 가스불 앞에서 조리한다. 조용하던 집 안에 사람 목소리로 가득 차는 날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함께 주말드라마도 보면서 오순도순 정담을 나눈다. 늘 바쁘다는 구실로 이따금 들리던 큰딸을 자주 보는 것이 반가운지 갈 때마다 물어보신다.
“이렇게 친정에 자주 들려도 괜찮으냐?”
바쁘다는 한 마디를 아무런 곡해 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주신 어머니이시다. 허리가 조금만 덜 아팠어도 어머니는 배낭에 찬거리를 눌러 담고 두 손 가득 무거운 짐을 챙겨 우리 집을 오가셨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요즘 금값인 쪽파, 겉절이용 유채, 겨울을 견딘 시금치로 우리 집 거실에 채소전을 펼치고도 남았을 분이다. 이제는 허리가 아파 실버카 없이는 마당을 가로지르는 것도 힘들어 하시니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집을 떠나 자취 생활을 했다. 주말이면 고향집에 와서 한 주 동안 먹을 양식과 반찬을 챙겨서 자취방으로 갔다. 그때부터 내가 집에 가면 내 몫의 보따리가 토방에 놓여 있었다. 양팔로 들고 고갯길을 넘어 신작로까지 걸을 수가 없어 교복을 입고도 머리에 이고 짐을 옮겼다. 이후 결혼 전후까지 참 많은 보따리를 챙겨왔다.
올 설이 지나고 다음 주에 또 친정에 들렸다가 돌아오는데 왠지 허전했다. 혹시 놓고 온 물건이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한 쪽 팔에 걸린 손가방을 본다. 친정집에 다녀가면서 손에 짐이 없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곡간에서 콩, 들깨 한 줌씩이라도 챙기던지, 이웃집 비닐하우스에서 푸성귀를 얻어와 내 보따리를 만들어 주셨는데…. 어머니의 굽어버린 허리만큼 기력을 앗아간 세월이 아쉬웠다.
이제는 내가 아들딸이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 보따리를 챙긴다. 미리 장을 봐서 반찬을 만들고 뭐가 먹고 싶은 지 물어가며 직접 만든 음식을 싸서 들려 보내려고 애쓴다.
“줄 것이 별로 없다.”
짐을 들고 대문을 나서는 아들딸에게 하는 내 말이 우리 어머니께 들었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때부터 상황이 반전되었다. 내가 친정으로 갈 때면 장을 봐 반찬거리와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를 챙겨 한 보따리 들고 간다. 선물로 받아 모아둔 타올도 들고 가서 낡은 것은 빼내고 두툼한 새것으로 채워 놓고, 주방용품도 편리한 것이 있으면 사서 가져간다. 평생 아끼느라 낡은 것만 쓰고 있는 어머니의 생활용품을 새 것으로 바꾸고 싶은 딸의 마음이다. 빈손으로 가서 양 손 가득 들고 오던,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보따리와는 견줄 수가 없지만 내게는 친정나들이의 달콤한 재미 중 하나이다.
지난 주말에 다시 친정에 들렀더니 어머니께서 냉장고를 열고 쑥 두 봉지를 꺼내 놓으셨다.
“지난번에 우리 딸을 빈손으로 보내고 나니까 어찌나 맘이 아파야지.”
빈손에 대한 허전함을 어머니도 가슴으로 느끼셨던 것이다. 그래서 봄 햇살 받으며 들판에서 쑥을 캐신 것이다. 쑥 하나씩 캐 바구니에 담으면서 평생 딸에게 들려 보내느라 챙겼던 보따리를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그 보따리에서 넘친 정으로 우리 아이들까지 건강하게 자랐다는 것을 아실런지.
내년 봄에는 남매들이 모여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쑥버무리를 함께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어머니의 정이 쑥 향으로 피어 집 안 가득하다.

/황점숙 수필가
전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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