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기획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눈] 바른 안목을 견지해야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1.04.22 17:57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우리 지역 순창에 있는 ‘귀래정’을 찾은 뒤 <귀래정 유감>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돌아갈 귀(歸)자와 올 래(來)자의 어울림/ 돌아가고 싶다는 말인지 돌아오고 싶다는 말인지/ 귀래정(歸來亭)이라 호를 지은/ 신말주※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어/ 서러이 남은 나무판의 질긴 살을 어루만지며/ 가고 옴의 순서를 번 가르다가// 집채 덩이만한 너럭바위를/ 끝내 쩍 갈랐다고 칭찬받던 굵은 나무며/ 그 끈기를 배우고 말겠다는 새끼 나무마저/ 무참히 잘려 나가 앙상한 뿌리만 남았으니/ 생명을 내세운 나무는 돌아가고/ 무생물인 바윗돌이 우러름 받는 세상이 왔단 말인가// 귀래정, 래귀정, 귀래정, 래귀정/ 단종·세조, 세조·단종/ 끝내 어느 쪽에도 편들지 못하고/ 이광수가 되었다가 김동인이 되었다가/ 길게 갔던 길을 되짚어 오고 말았네.”라고.
똑같은 상황을 놓고 이광수는 단종 쪽에 마음을 기울여 『단종애사』란 소설을 썼고, 김동인은 세조 쪽에 마음을 기울여 『대수양』이란 소설을 쓰지 않았던가?
우리의 역사 속에는 이렇게 같은 상황을 아주 다르게 본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의 침략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동인 김성길과 서인 황윤길의 의견이 실제 본 상황과는 상관없이 당리당략에만 눈이 어두워 바른 판단을 그르치게 했고, 병자호란의 끝 무렵 남한산성에서 나온 인조 임금이, 눈보라 휘몰아치던 삼전도三田渡에 이르러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억지 예로 항복문서를 바치기 직전 “죽어서 맞는 삶”을 주장한 호조판서 김상헌을 중심으로 한 척화파와 “살아서 맞는 죽음”을 주장한 이조판서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지 않았던가?
우리 문인들은 언제 어디서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바른 안목으로 사리를 판단하여 독자로 하여금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할 책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신말주 : 신숙주의 아우로서, 단종이 폐위되자 처가인 순창에 내려와 은둔생활을 한 학자.

/김계식 시인
전북시인협회 상임이사


저작권자 주)전라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