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e-전라매일 |
|
■ 1987년 탄생한 재경전라북도민회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엔 전라북도 서울장학숙이 있다.
이 전라북도 서울장학숙 본관 1층엔 사단법인 재경전라북도민회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사무실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출향 전라북도 도민들의 공식 모임인 재경전라북도민회의 보금자리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출향 전북인들은 재경전라북도민회 창립 준비에 나섰다. 이듬해인 1988년, 재경전라북도민회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해 12월 열린 창립총회에서 당시 아시아나항공 회장이었던 황인성 회장을 재경전라북도민회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1989년, 재경전라북도민회는 전라북도 서울장학숙 건립을 위한 기금조성에 나섰다. 그해 6월, 전라북도 서울장학숙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1992년,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에 있던 재경전라북도민회 사무실은 방배동에 있는 현 전라북도 서울장학숙으로 옮겨졌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제3대 회장을 맡았던 시절인 1994년, 재경전라북도민회는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내무부 허가를 받았다.
|
 |
|
| ⓒ e-전라매일 |
|
■ 14개 시‧군 재경향우회 개요
수도권엔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재경향우회가 있다.
재경향우회의 명칭은 조금씩 다르다. ‘OOO향우회’, ‘OO군민회’, ‘OO시민회’ 등이다. 통칭 ‘재경OOO향우회’ 부른다.
재경전라북도민회가 사단법인체인 반면, ‘재경OOO향우회’는 대부분 임의단체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14개 시‧군의 향우들이 임의적으로 창립해 운영해왔다.
14개 시‧군의 ‘재경OOO향우회’는 재경전라북도민회의 산하단체가 아니다. 각 향우회는 개별적인 조직으로 운영된다. 재경전라북도민회와 연대하고 협력한다.
14개 시‧군의 ‘재경OOO향우회’의 역사는 대부분 길다.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향우회가 많다.
각 향우회는 정관이나 회칙을 갖고 정해진 임기에 맞춰 회장단을 꾸린다.
보통 각 향우회엔 사무처가 있다. 회장단의 실무를 담당하는 기구다.
이 사무처의 장을 ‘사무처장’이라 불렀다. 몇 년 전부터는 사무처장의 직함이 ‘사무총장’으로 바뀌었다.
|
 |
|
| ⓒ e-전라매일 |
|
■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협의회 개요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협의회의 역사는 약 20년이다.
현재 회원은 40여명이다. 14개 시‧군 향우회의 전‧현직 사무총장들이 회원이다. 입회와 탈퇴는 자유다.
제8대 회장은 재경장수군향우회의 이관식 씨였다.
지난 2015년 10월,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단은 서울시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장수군 출신인 이관식 씨를 회장으로 선출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서울시 신사역 근처 하림빌딩에서는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협의회 제17차 정기총회와 회장 이‧취임식이 열렸다. 제8대 이관식 회장이 이임하고, 제9대 탁경진 회장이 취임했다.
|
 |
|
| ⓒ e-전라매일 |
|
■ 재경고창군민회 사무총장인
탁경진 회장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협의회 제9대 회장인 탁경진 회장은 현재 재경고창군민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제9대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협의회의 감사는 이병준 재경김제시민회 사무총장이, 총무는 재경무주군민회 고귀선 사무총장이 맡았다.
탁 회장은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고향과 향우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현재 재경 향우회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연령이, 50대가 가장 젊을 정도로 고령화되고 있고, 참석 인원도 4년 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고향과 재경 향우들이 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군 향우회별로 추진해 왔던 우수소통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탁 회장은 고창군 대산초등학교, 대성중학교, 고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인 출신인 탁 회장은 전역 후, 재경고창군민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탁 회장은 2010년부터 재경대산면민회에서 6년간 사무국장을 맡았다. 2016년부터는 재경고창군민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재경전라북도민회 시‧군사무총장협의회 제9대 회장에 취임하며 탁 회장은 이런 말도 남겼다.
“군 생활을 하느라 고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게 늘 가슴 한 켠에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고향을 위한 마지막 봉사활동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
|
| ⓒ e-전라매일 |
|
■ ‘고향은 진화·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탁 회장은 전북의 한 신문사에 이런 글을 투고한 바 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온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장마·태풍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답답함에 위안을 얻고자 무박 일정으로 무작정 고향으로 향했다.
인생에서 지금까지도 필자는 바깥 세상에서 추상적으로만 내면의 일상적인 고향만 논하고 바라보았다. 어려운 시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고향에 파묻혀 고향을 알고 싶었다.
내 고향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고창이다. 고창은 지리적으로 강과 산, 바다, 논밭, 갯벌 등을 모두 갖고 있는 태고의 풍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고창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되어 끼니도 해결할 겸 고창읍내 전통시장을 찾았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장날이지만 한산했다. 시장 내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고구마순을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가 낯설지 않고 정겹다.
시장 내 식당에서 국밥 한 그룻으로 허기를 해결하고 농축수산물 판매장을 찾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창수박에 ‘높을高고창’ 브랜드가 붙어 있었다. 판매자로부터 브랜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농생명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한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농축수산물판매장 판매자는 고창이 농생명 식품산업 육성을 최우선 비전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 ‘높을高고창’ 브랜드는 최상의 안심먹거리 공급을 백년대계로 추진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황토에서 생산되는 수박, 멜론, 쌀 등을 시작으로 최고급품에만 브랜드를 부착하고 쌀의 경우 생산량 1%만 브랜드를 부여함으로써 차별화한다. 농생명식품 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데 고창인으로 자부심을 가져본다.
고창읍내릍 벗어나 자동차로 10여 분 만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고인돌 유적지에 도착했다.
온통 코로나19의 방역예방수칙 간판과 경고판, 현수막이 내걸려 모든 볼거리를 방해하고 있어 아쉬웠다. 고창 고인돌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집도를 자랑한다. 고분에서 금동신발과 중국청자 등 청동기와 철기시대 지배계층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며 고창이 문명사적으로도 중심지였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니 호남인의 긍지를 가져본다.
고인돌 유적지를 관람한 후,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생명의 슾지인 운곡람사르슾지와 심원 갯벌을 지나 동호 해수욕장, 구시포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벌써 바닷가는 붉게 물든 한폭의 풍경화로 변해 낙조를 만끽할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구시포 해수욕장 앞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모친이 계시는 곳으로 향했다.
고창은 고창읍성-선운사-고인돌유적지-갯벌-습지-온천-상하농원 청보리밭 등 다채로운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산재해 있는 고장이라 계절별로 올 때마다 색다르고 오감을 만족하는 포근함을 느낀다.
수박, 복분자, 땅콩, 멜론, 고추, 무, 배추, 양파, 고구마, 가시오가피, 보리, 아로니아, 풍천장어 등은 이미 대한민국의 대표 생산지가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식초산업과 장(된장·고추장), 김치, 전통주, 젓갈 등 발효식품도 대표1번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고창이 격변하는 농어촌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상생의 길을 가고 있음은 고향에 희망이 있고 진화·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청정지역인 나의 고향이 장마에도 큰 피해 없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농생명 문화와 고향 상생발전의 비전을 보고 희망을 가져본다.
고창이여 영원하라!’
/서울=박찬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