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기획 요일별 특집

[온고을 문학산책] 리모델링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1.06.23 16:39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드르륵드르륵’ 소리에 힘이 잔뜩 실렸다. 다음 날은 주말이니 일을 서두르는 듯 아침부터 공사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는 한정된 공간의 분위기를 확 바꾸고 말겠다는 듯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강산이 두어 번 변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여기저기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사행렬이 이어지고 리모델링하는 소음도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바로 윗집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마침 낮 동안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서는데 옆집 주인이 주차장에서 서성거린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시끄러워서 집에 머물 수가 없다면서 고통을 호소한다. 옆집 역시 윗집에서 공사를 알린 적이 없단다. 옆집도 사전양해를 받지 못했다니 공사기간 내내 소음이 더 신경을 거슬렸다. 불편한 것은 고치고 살아야 마땅하다.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망은 이집 저집으로 전파 중이다.
우리 집도 앞 베란다 바닥을 보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우리도 원목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실내가 아늑한 집이다. 하필 베란다 바닥에 빗물이 스며들어 바닥재 일부분 목재가 잿빛이 되었다. 이곳만 보면 근심거리가 한 짐이었다. 매번 공사소음이 들릴 때면 찾아가서 견적을 받아볼까 하는 갈등에 시달렸다. 이참에 우리 집도 부분 공사를 하자고 했다.
먼저 베란다를 지키고 있는 키 큰 책장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는 꼭 다시 펼쳐보겠다는 각오로 몇 년 째 책장에 꽂아둔 빛바랜 책을 과감히 정리했다. 또 묵은 물건 중에 하나가 앨범이다. 색 바래고 들뜬 표지와 누렇게 변한 속지를 그대로 실내로 옮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나의 유년시절의 흑백사진부터 신혼여행 사진까지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오랫동안 견뎌준 물건이라 더없이 소중하다. 주인 잃은 듯 방치된 사진을 보며 오랜만에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빼면서 이 또한 정리가 시급함을 느꼈다. 부부가 환갑을 지낸 이 나이에 신혼여행의 사진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의 소중한 추억은 가슴 속에 꾹꾹 담아두기로 하고 대표할 사진 몇 장만 남기고 버렸다. 십여 권이 되는 앨범을 세 권으로 압축하여 정리했다. 짐정리를 할수록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나이 들수록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얼굴이라고 한다. 사진 속의 세월은 적나라하게 나를 노년으로 이끌고 있었다. 두발염색 말고는 흔히 하는 눈썹문신도 한 적이 없는 내게도 사진 속에서 바뀐 모습이 눈에 띈다. 중학교 시절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다친 앞니가 중년 무렵 사진에서 두드러지게 퇴색되어 보인다. 가끔 잠을 설치게 하는 치통을 잠재워가면서 발치를 미뤘더니 사진 속에 고스란히 아픈 흔적으로 보인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는 청춘 때부터 웃고 있는 사진이 별로 없다. 어쩌다 보이는 웃는 사진에는 거무스름한 치아가 마치 빠진 듯해 보기 싫다. 아픈 부위를 알면서도 품고 살았던 치아를 교정하고 난 뒤 찍은 사진의 미소가 밝다. 일찌감치 교정을 하고 환희 웃으며 살 걸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생긴다. 한두 번의 처방으로 아픈 곳이 나아지던 젊은 시절 몸뚱이가 아니다. 여러 번 진료를 받게 되고 오랜 시간 약 복용을 하게 된다. 그래도 고쳐 쓸 수 있는 몸은 건강한 셈이다. 집도 마찬가지리라. 고쳐서 새집처럼 쓸 수 있다면 시도해 볼 일이다.
잿빛이 된 부분의 목재를 뜯기 시작했다. 적잖게 예상되는 소음으로 걱정했는데 윗집 소음을 박자로 맞춰 쩍쩍 소리를 내며 바닥을 뜯었다. 식구가 힘을 합쳐 한나절 품을 파니 끝이 보인다. 오로지 베란다의 흠을 제거하는 부분 공사를 끝냈건만 리모델링한 집 마냥 기분이 산뜻하다. 분위기가 새로워진 창가에 미니 탁자를 놓고 찻방을 만들었다.
향긋한 차를 한 잔 들고 베란다 창가에서 책장을 넘겨본다.
/황점숙
전주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주)전라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