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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정개(與民正開)의 혁명가 견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2.06.08 15:51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 견훤이 세운 후백제 선양과 시민운동

견훤대왕은 892년에 무진주(광주)에서 ‘백제’라는 국호로 후백제를 세우고 900년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며 이 땅이 바로 미륵정토의 땅이라 찬양한다. 완산주는 북으로 백제 무왕의 왕도였던 익산 금마저 바로 아래에 있다. 남으로는 신성한 모악산이 있어 이 땅을 도읍터로 정하였다.
견훤은 왕도(王都)이름을 ‘완산’이라 했다. 완산성에서 농민의 자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백성과 더불어 열고자 ‘여민정개’ 정신을 실천한 혁명가이다. 비록 후백제 왕조가 2대에서 멈췄지만 견훤의 ‘세상을 바르게 열겠다’는 그 기개와 진취적인 정신을 잇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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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백제, 한국역사에서의 위치는 어떠한가?
후백제는 어떠한 나라인가. 48년간(889년~936년) 존속하며 완산(전주와 완주)을 도읍지로 산성을 쌓고 커다란 왕궁을 지어 고대사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지 않았는가.
전주는 900년부터 37년 동안 완산이란 이름으로 후백제의 왕도(王都)였기 때문에 천년고도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견훤의 책사인 최승우가 써서 왕건에게 보내 격서를 보면, “위태한 신라 경순왕 세워 신라를 보전한다. 왕건 족하에 충고한다. 온갖 술책으로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아직 내 말머리도 보지 못하고 내 소털 하나 뽑지 못한 주제를 알라. 기약하는 바 평양 문루에 활을 걸어두고 패강(대동강)에 말의 목을 축이는데 있다” /삼국사기 권50 견훤전
후백제는 비록 반세기 2대 왕조에서 멈췄지만 한국사에서 그 지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역사 변화와 정신사의 발전을 실천.주도했다는 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
네 가지 면에서 혁명적 업적을 논한다.
첫째로 신라후기 고대사에서 중세로의 전환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당시 호족이 득세하며 봉건적 지방분권이 촉진되어 중세사로 넘어가는 과도기 그 중심적 역할을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담당했다. 특히 후백제의 견훤왕은 둔전제(중국조조 실시, 전방조달 농지경작)를 실시하고 합덕지 방죽을 축조하는 등 농업생산을 증대하며 생활을 크게 개선하였다. 둔전제 관개시설로 혁신적 농업경제 증진시켰다. 이는 국가의 비전인 여민정개(與民正開)의 실천이다.
만민언( 임피), 합덕지 (당진)은 큰 둔전을위한 저수지이다. 호서의 합덕방죽은 국내 제일 큰 제방이라고 정조 일성록과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견훤대왕은 합덕 둔전과 성동산 450 m 토미산성을 축조하였다. <당진지> 기록을 보면 합덕지역에서는 1930년대까지 견훤장군을 위한 감사제전 거행하였다고 전한다.
둘째, 외세(당)를 끌어들여 대륙을 잃고 불완전하게 통일된 한반도가 후백제를 통하여 당 역사문화권에서 벗어나고 외교의 다변화가 촉진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후백제는 오.월,거란,왜와 교류하였다. 견훤은 왕도인 전주에서 곧바로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조수가 만경강을 따라 들어올때에 중선배들이 완산주의 회포까지 들어왔다. 전주의 진산인 성황산(승암산 동고산성)에서 바라보면 회포까지 들어온 석양녁의 조수(潮水)가 바다처럼 보였었다.
전주는 만경강을 통해서 물화를 실어나르는 강해도시였고 해항도시(海港都市)였다. 후백제 견훤은 전주에서 만경강 교통로를 이용하여 사단항로로 항주만의 오월국과 교역을 한 것이다.
셋째, 신라말 골품제의 폐해와 부패 향락과 권력 쟁탈로 왕이 살해되는 어수선한 정국으로 전제 왕권과 귀족의 통치정신인 교종(조화와 통합 중시)불교가 퇴화되었다. 대신 민중중심의 선종(불성 깨달음 중시)불교로 전환 계기가 되며, 견훤은 미륵불 신앙으로 정신사 변화를 주도하였다. 변혁의 중심에 후백제가 있었다. 그래서 미륵정토인 금마산(용화산)이 있는 익산 아래 완산에 좌정하였으며 완산의 남쪽에 금산사를 미륵하생도량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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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 후백제는 미니통일로 왜곡된 사대사관에 희생된 ‘역사 바로세우기’의 대상인 백제의 후왕국이다. 한류의 뿌리가 된 백제 완산(전주)권 고유문화와 정신사를 승계하였다.
견훤은 마한과 백제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백제(百濟)’라 하고 세상을 바르게 열어보자는 뜻으로 연호를 ‘정개(正開)’라 하였다. 전주는 고려 왕건이 왕성을 불살랐을지언정 왕도의 역사와 혼을 간직하였다. 이리하여 전주는 후에 고려를 멸한 조선 건국의 본향 도시의 토대를 다지게 된다. 화엄종문 해인사 선문도량을 받은 실상산파 편운화상부도에 “정개원년” 이라고 새겨져 있슴을 주목한다. ‘여민정개’, 백성 더불어 나라를 바르게 연다 라는 뜻이다.
2020년 말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견훤(甄萱), 새로운 시대를 열다’ 라는 기획전이 개최되고, 이어 2021년 3월말에 상주박물관에서 ‘역사에서 신화가 된 견훤’ 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이어져 큰 관심을 끌었다. 영호남 교류라는 역사적 당위성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견훤의 여민정개 혁명의 씨앗이 조선 창업의 씨앗이 되다.
완산주에는 활화산 같은 문명의 기운이 하늘을 감싸고 있다.
이를 간파한 자가 이 곳에서 900년 왕도를 세우고 중세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 견훤대왕과 이곳을 조선의 본향 풍패*라 정하고 1392년에 조선을 창업한 태조대왕이다. 위대한 혁명가 견훤대왕과 태조대왕은 완산에서 왕도의 꿈을 간직했다.
육당 최남선 왕건은 천고의 음모가로 규정하며 진정한 영웅 견훤과 후백제의 몰락을 안타까워 했다.
필자가 발표한 시를 소개한다.

동고산성-후백제 견훤의 꿈을 엿보다/ 몽촌 한봉수

대동강가 달려 말을 먹이고
고구려 평양성 문루에 활을 걸자.
변산 줄포만에 큰 배를 띄워
황해바다 건너 대륙으로 가자.

승암산올라 북쪽산에 미륵을 본다.
아, 백제의 꿈이 이글거리는 하늘 아래
남쪽산 모악에 이르는 완산의 땅을 살핀다

이 거룩한 산에 성을 쌓고
백제의 길을 따라 말을 달리자.
백성의 피맺친 절규에 귀를 기울고
오로지 그들 더불어
세상을 바르게 펼쳐보리.

견훤대왕이여,
순천만 마로에서 깃발을 달려
무진주에서 선언한 그대의 언어는
미륵정토 이 완산 땅에 뿌려져
혁명의 씨앗이 되었구려.

오백년후*
그대의 산성에서 뻗어난 발리산을 타고
청년의 팔뚝같은 힘줄에 피가 돌아
이목과 오목을 타고 내려
아, 완전한 땅 정수리에 꽃 피우리.

견훤대왕의 다이네믹한 꿈을 재현하자

견훤왕이 900년 왕도로 세운 완산주(전주와 완주포함 지명)는 미륵정토의 땅이다. 견훤은 완산주 바로 남쪽 모악산 김제 자락에 금산사를 증축한다. 완산주 북쪽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또한 염두에 두었다. 이렇게 미륵불에 보호 받는 완전한 땅에 미륵정토를 세웠다.
금산사는 후기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가 불사의 방 수행 후에 수계받고 건축한 절이다. 두 가람 모두 미륵하생도량 가람 구조를 띠고 있다.
견훤은 백제 무왕이 금마저에 천도한 익산백제의 역사를 잇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있다.
전주시와 전북도는 후백제사 문화자산 의미를 살려 역사복원운동과 후백제 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견훤대왕의 뜻을 알리는 범도민적인 축제를 열 필요가 있다.
1. ‘정개’ 연호 새겨진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부도등의 국가문화재유산등재 추진하며, 범 도민적 ‘여민정개 문화축제’를 제안한다.
2. 진훤왕 전주천도행렬을 실제 견훤왕의 행로인 서안지역을 따라 ‘입성재현축제’를 함께 개최하길 제안한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후백제선양회 기념식 축사에서 “동고산성이 사적지로 지정받게되어 그동안 노력이 결실을 맺을 거”라고 말하였다. 또한 후백제 왕성의 서쪽 성벽으로 고증된 자리(노송동)에 ‘후백제 역사관’ 건축을 시작했다” 고 밝혔다. 금년내 개관이 확실하다.
전주시는 2000년 - 후백제가 서기 900년에 전주에 도읍하고 1100년 된 해-을 기념하여 ‘후백제문화사업회’를 발족하고 학술대회와 조사.발굴을 지원해 왔다. 지난해 6월에는 전주시가 주도하여 완주군 상주시 논산시등 전국 7개 시군이 모여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한 바 있다.
금년 1월 18일에는 ‘후백제 고대사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토론회를 후백제학회와 전주시등 7개 시군협의회 및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주최하여 국회 세미나실에서 성대히 개최하였다. 필자는 이날 후백제시민연대대표 자격으로 사회를 봤다.
우범기 신임 시장당선자는 “전주는 40년 후백제의 왕도였다. 전주시 중노송동 인봉리 문화촌 일대를 중심으로 후백제 왕도를 복원하겠다”고 큰 비전을 밝힌바 있다. 또한 후백제 역사복원과 문화관광자원 확충을 위하여 1조원 계획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한국사에 다이네믹한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후백제의 땅에서 한국사의 정신이 재정립 되어지길 바란다. 또한 새로운 민족문화.관광의 시대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후백제 선양과 시민운동전주시 노송동과 인후동 일대 재개발로 도성 유적들이 훼손될 우려이다.후백제가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이 정한 역사문화권에 꼭 포함되어야 할 이유이다. 후백제의 왕릉, 사찰유적과 불교문화유산, 청자.도자문화, 해양문화, 대외교류 등 고대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유물들이 전라남북도와 충청 전역에서 속속 발굴되었고 발굴중에 있다. 지난해 5월, 전주시민들이 모여서 후백제 역사정립과 역사인식 확산을 위해 <후백제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출범시키고 6월에는 ‘후백제와 견훤 ’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 및 시민 대토론회를 성대히 개최했다.
이날 후백제학회와 후백제시민연대는 후백제 궁성 추정지인 전주 인봉리 일대를 보존하기 위한 5개 사업 추진을 전주시에 건의했다.이 5개 건의사항은 △견훤로에 후백제 랜드마크 조성 △인봉리 주택재개발 대안 제시 △후백제 문화관광해설사 교육 및 배치 △후백제 강연 및 시민강좌(사회교육) 개최 △후백제 역사관(자료관) 건립 필요 등이다.
시민연대는 인봉리와 기자촌일대 왕궁추정 유적지 및 동고산성일대 동고사, 성황사지와 왕궁터를 답사했다. 견훤의 해양 진출루트인 만경강따라 탐방한 바 있다.앞으로 남고사와 봉림사등 전주권뿐 아니라 부안,김제등 후백제 –해양진출권 루트, 순천만 일대등 견훤 초기활약지역, 상주,가은 일대의 견훤의 소년,청년기 유적을 답사하며 그때마다 다양한 정보,정책등을 나누고 국민과 정부에게 알리고자 한다.후백제선양회(강회경이사장)는 2017년 출범이후 2021년엔 <후백제개국 전주정도 1121주년 기념식>과 <제5회 견훤대왕숭모대제>를 행례한 바있다.앞으로도 후백제 역사문화 선양공원을 조성토록 시민운동을 전개하여 견훤대왕의 영정제작, 사당과 역사문화유산 체험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대한민국은 견훤대왕부터 키워오던 소슬한 저항정신과 해양에 대한 진취적 꿈은 인내의 깊은 호수를 만들며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선비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임진,병자난때 혁혁한 구국 의병활동과 요원의 불길이 된 동학농민의 외침,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의 피는 이러한 저항정신과 충절의 뿌리에서 이어온 것이다.시대가 변화를 원했고 후백제의 견훤이 앞장섰다. 연호 ‘정개’처럼 ‘세상을 바르게 열겠다’는 그 기개와 진취적인 정신을 살려야 한다. 시민들이 함께 후백제 복원과 선양에 압장서야 한다.- 한봉수 문학평론가, 전북과미래연구소장, 후백제시민연대공동대표
# 후백제 왕도 전주 바로 알리기 학술세미나 및 시민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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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궁성지로 추정되는 전주 인봉리 일대를 보존하고 후백제정신을 되살리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1일 오후 한국전통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후백제 왕도 전주 바로 알리기 학술세미나 및 시민토론회」에 교수.연구원, 시민들이 참여하여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교수는 전주 인봉리 일대가 후백제 궁성지로 추정된다고 말하고 보존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후백제 궁성은 마당재에서 인봉리 북쪽 능선을 타고 내려와 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풍남초등학교, 전주제일고등학교에 이르는 반월형 형태를 갖춘 것으로 추정했다. 궁성은 양택풍수에 의거하여 도성의 중앙에 인봉리 왕궁을 배치하고 그 방향을 서쪽으로 향하게 한 것은 좌동향서(坐東向西)로 미륵신앙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했다. 곽 교수는 따라서 피난성이자 행궁으로서 동고산성과 함께 이성체제를 갖춘 것으로 분석했다.
곽 교수는 이와 함께 기린봉 동쪽 사면인 우아동 무릉(武陵) 마을의 무릉이 왕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양택 왕궁과 음택 왕릉이 존재함으로써 전주는 후백제 왕도로서 위상을 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곽장근 교수의 설명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박일천 국립전주박물관 여성문화답사회 회장은 이 지역에서 추진되는 재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현지 주민이 이전해서 살 수 있도록 대책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봉수 전북과미래연구소 소장은 완주와 전주는 완산으로 하나인 땅으로서 후백제 38년의 도읍지 였으며 후백제 궁성을 비롯한 전주의 유적지 발굴 조사에 집중해야 하지만, 입증된 고산 봉림사지를 비롯하여 위봉,봉동,용진등 왕도의 의미가 있는 완주군지역, 후백제 해상 진출로 였던 김제와 부안군일대도 조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전라북도가 적극 나서야 하며 후백제에 큰 예산을 세워 발굴 속도를 내어 국가문화유산은 물론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화섭 후백제학회 회장은 후백제 왕도이자 조선 왕조의 본향이 된 곳은 전주가 유일하다고 역설하고, 학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정리해 문화재 당국에 강력하게 건의해서 후백제 정신을 되살리며 후백제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제2의 한옥마을 관광경제를 일으키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후백제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후백제 정신을 되살려 전라도 정신을 바로 세우자는 데 역점을 두고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에는 조상진 전북일보논설위원이 좌장으로, 한봉수 전북과미래연구소장, 강회경 후백제선양회회장, 여춘희 한국문화관광해설사전북대표, 박일천 국립전주박물관문화답사회대표가 시민토론자로 나섰다. 전라북도와 전주시, 후백제학회가 주최하고 후백제시민연대 등이 주관했다.(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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