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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전라문화는 힘세다(2)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6.09 18:23 수정 0000.00.00 00:00

코리아의 KPOP이 세계인의
인정받으리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그 성공한 기적의 현장을
오늘 2022년
현재도 똑똑히
보고 있는 게
증거가 될 것이다

ⓒ e-전라매일
5백년 조선왕조의 역사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점 하나가 바로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란 업적인 한글창제를 나라가 망할 때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한글로 기록된 놀라운 기록유산을 업신여긴 점이다. 그 주모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양반권력 세력이다. 그래서 이런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전라도 사람들의 놀라운 창작력과 문화력이 힘이 센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업신여김을 받은 문자인 한글, 이 언문으로 우리의 위대한 고전문학을 완성해 낸 주인공이 바로 전라도 사람이다.
억압적인 조선사회에서 여자로서 어떠한 억압에도 당당히 자신이 사랑의 주체임을 밝힌 열 여섯살 소녀 춘향의 용감한 사랑 선언, 형제간의 정까지 짓밟을 수 있는 탐욕의 본모습을 그려낸 흥부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인간의 생존 가치를 표현한 적벽가의 새타령, 기꺼이 봉사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고 당당히 장애인을 존중한 심청이, 토끼와 자라를 통해 인생의 속임수와 허망한 가식을 그린 수궁가 등... 우리 인생을 정직하고 당당하게 삶의 모습을 꾸밈없이 통째로 드러낸 고전문학, 그리고 이 삶의 예술인 고전문학을 더욱더 흥미롭게 만든 것이, 전 세계 창작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재창작 작업이 판소리로 거듭났다. 바로 음악이라는 새로운 멜로디와 장단을 덧입혔다.
흥미로운 사설을 더욱 신나게 걸죽한 입담인 아니리로, 사랑스러운 춤사위 발림으로 재창조해 낸 전라도 사람들의 그 탁월한 예술성은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이런 판소리 문학과 음악에 한걸음 더 나가 만들어낸 인생의 가락, 산조 음악, 이 산조는 20세기 초 작곡가 김창조(金昌祖)에 의해 가야금산조(伽倻琴散調)가 만들어지기 시작되았고, 거문고산조(玄琴散調), 대금산조(大琴散調), 해금산조(奚琴散調) 그리고 1950년경 아쟁산조(牙箏散調)의 순으로 창작됐다.
산조(散調)는 느린 장단으로부터 빠른 장단으로 연주하는 대표적 기악 독주곡으로 전 세계 어떤 민족음악이나 현대 음악에서 조차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솔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독주곡이다.
조용하게 마주친 눈빛에서 느린 진양조 장단으로 시작되고, 중모리와 중중모리 장단으로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자진모리의 격렬한 입맞춤과 휘모리의 절정, 그 절정 이후 맞는 고요한 다스름의 바다를 경험하게 한다. 산조 음악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면 장구 장단으로 단 하나의 악기로 빚어낼 수 없는 엄청난 인간 감정이 폭발시킨 놀라운 음악적 세계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음악을 통한 나와 당신의 멜로디 러브스토리가 된다. 분명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산조는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잘 소개되지 못했지만 이 음악을 만들어낸 전라도의 위대한 작곡가들의 예술성을 세상이 인정해줄 날이 머지않아 분명히 다가올 것이다.
바로 가까운 미래가 인정받게 될 전라도의 작곡 명인들 지금이라도 기억해두기를 바랄 뿐.
조선 고종 때 산조의 세계를 처음 작곡한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金昌祖 1865년~ 1919년), 묵직한 거문고 산조는 백낙준(白樂俊)이 창작하였고, 신쾌동(申快童)과 박석기(朴錫基 1900년 ~ 1953년)에게 전수되었다. 또 우리 가슴을 애타게 만든 대금 산조는 전라도 진도 출신의 박종기(朴鍾基 1879년 ~ 1939년) 선생에 의해 창작되고, 해금 산조는 지용구(池龍九), 피리 산조는 최응래(崔應來)가 작곡, 최근 작곡가 박범훈에 의해 보다 흥겹게 재창작됐다. 가장 마지막으로 아쟁 산조는 광복 후 한일섭(韓一燮 1929~1973) 작곡가에 의해 시작되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가 격찬할 우리 음악 영웅, 작곡가 기록이다.
판소리 문학과 음악의 작가와 작곡가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지워져 있는 현실에 비하여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기악 독주곡 산조는 20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기에 자랑스러운 작곡가 이름. 즉 음악 저작권자의 이름이 분명히 남겨져 있게 됐다. 이들의 놀라운 음악적 업적은 세계 음악사에 명곡 작곡가의 이름으로 들려 울려 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음악 프로듀서의 한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중국의 변방으로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대한민국, 코리아의 KPOP이 세계인의 인정받으리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그 성공한 기적의 현장을 오늘 2022년 현재도 똑똑히 보고 있는 게 증거가 될 것이다. 어떻게 싸이와 BTS, 레드벨벳의 음악이 빌보드 음악차트에 오르는 성공을 꿈에라도 기대하였던가

/최공섭
프리랜서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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