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e-전라매일 |
|
정자 옆 담벼락에 늘어진 담쟁이 이파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아직은 차가운 아침 바람이 이파리 사이를 노니는 틈새로 나도 운동기구 곁으로 찾아든다. 공중걷기 기구에서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딛고 앞뒤로 발을 움직인다. 아침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를 따라 올려다본 우람한 메타세쿼이어는 날마다 녹음이 짙어진다. 금연구역이라는 빨간 글씨가 정자의 문패처럼 붙어있다. 어찌해 문패를 보지 못한 이들이 버리고 간 흔적을 지우기 위해 매일 청소원이 다녀가는 곳이다.
늘 조용하던 그 곳에 인기척이 있다. 운동을 하고 있는 주민과 눈이 마주쳐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 장소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이른 아침에 같은 곳에서 만나는 것도 인연인가 보다. 상대방도 답례를 하고는 나를 잘 모르겠단다. 두세 번 스치듯 만난 사이이니 지인은 아니다.
그녀는 운동하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 아파트 경내를 돌며 걷다가 운동시설이 있는 곳에 들러 기구 한 귀퉁이를 잡고 잠깐 팔다리운동을 하고 간다. 처음에는 모자를 쓰고 있더니 어느 날부터 긴 머리를 하고 있어 헤어스타일로 알아보는 정도이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하는 걸 보니 부지런해 보인다. 밤새 말벗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묻지도 않았는데 운동을 시작한 사연을 풀어 놓는다. 나도 운동 중이라 말소리에 집중이 되지 않는데 그녀가 털어놓는 병력으로 깜짝 놀랐다. 건강검진을 하지 않고 살다가 병이 깊어진 뒤에 알게 됐다는 얘기가 귀에 담겨 왜 그랬냐며 반문을 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다는 대답에 과연 나 역시 내 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이 깊어진다. 다행인 것은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수술을 하고 아직도 정기검진을 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근육 강화를 위한 운동을 한단다.
나 역시 얼마 전부터 유독 둔해진 몸놀림을 유연하게 하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산책하기 좋은 뒷산이 있다. 여러 차례 한 주에 몇 번만 올라보자 결심을 했지만 그때마다 작심삼일이 됐다. 그러던 차에 기상하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 안이라 이동거리, 시간, 날씨 등에 구애 받지 않으니 참 좋다. 서너 달 하고 나니 몸에 밴 일상이 됐고 몸놀림이 가벼워 만족이다.
덕분에 찬바람이 물러가고 담쟁이가 새 잎을 틔우고 새 가지를 뻗어가는 것을 관찰하고 있다. 늘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니 했던 정자에 머무는 발자국도 헤아려 본다.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며 지붕에 머물고 우람한 메타세쿼이어는 그 곳에 그늘을 만들어 준다. 누렇게 벤치를 덮은 송홧가루 위에 담쟁이 이파리가 몇 장 겹쳐 놓인 것이 주민들의 쉼터였음을 말해준다.
잠깐 들러 기구를 잡고 스트레칭을 하던 그녀가 오늘 아침은 이십 분 가량 함께 운동을 한다. 아침 8시면 집에서 나가야 해서 이른 아침에 운동을 한다면서 듣는 이가 나 뿐인데 자신의 얘기를 마치 가지런히 무채를 썰듯 조곤조곤히 이어간다. 자신의 이야기가 무르익었는지 내가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다.
먼저 건넨 짧은 인사가 한 여인의 인생이야기까지 끌어냈다. 울창한 정원수 사이를 누비는 까치소리에 아침 공기를 더 맑아진다.
/황 점 숙
전주문인협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