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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 공감, 톡톡! 이달의 독립운동가] 강제하·이웅해·백남준·최명수 선생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8.10 18:18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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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대한통의부 창립에 기여하고 남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강제하·이웅해·백남준·최명수 선생을 ‘2022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남만주에 있는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광복군총영 등 17개 독립운동 단체 대표 50여 명이 모여, 남만주에서 독립군기지 재건과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창립된 통합단체였다.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강제하 선생은 남만주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부단장이 돼 독립군을 국내로 파견해 일제 기관을 파괴하고 군자금을 모집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다.
1922년 8월 통의부 탄생에 기여했으며, 독립군의 생계를 책임지는 권업부장을 비롯해 교통위원, 재무부장 등의 직을 수행하며 통의부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함경남도 출생의 이웅해 선생은 1919년 4월 항일무장의 기반조성을 위해 독립군단인 대한독립단을 조직해 사법부장에 선임된 후 대한독립단 소속 독립군의 항일 운동을 지원했다. 1922년 22명의 동지와 함께 대한독립군 대표로 남만한족통일회의에 참석해 통의부를 탄생시켰으나, 1928년 12월 일제 경찰대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 징역 8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백남준 선생은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1911년 일제의 신민회 탄압을 위해 조작한 데라우치 암살사건에 연루·체포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 후 남만주로 망명했다.
1922년 남만한족통일회의에서 광복군총영 대표로 참가해 통의부를 창립하는데 공헌했다.
1932년 일본이 만주에 만주국을 만들어 한국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고, 선생도 이 때 붙잡혀 국내로 압송,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충청북도 출생의 최명수 선생은 국내에서 망명한 신민회 인사들과 서간도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참여했다. 1912년 서간도에서 설립한 경학사를 계승해 부민단을 조직했고,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등의 무관학교를 만들며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다.
1920년대 후반 만주를 떠나 상하이에서 활동한 선생은 1934년 12월 일제의 상하이 영사관 경찰에 검거돼 국내로 압송,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강제하 선생, 이웅해 선생과 백남준 선생에게 각각 1995년, 2010년, 2014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최명수 선생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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