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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전기안전연합회’ 이상인 회장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8.18 18:10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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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장수군 장수면 장계리 출신

장수군 장계면(長溪面). 장수군 동부에 있는 면이다.
동쪽은 해발고도 1,000m 급의 산지로 경남 거창군·함양군과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룬다. 동부에 있는 깃대봉 등 1,000m급 산봉우리 사이엔 육십령(六十嶺)이 있다. 경남 거창과 이어지는 통로다. 여기서 ‘천천(天川)’이 발원해 금강의 상류가 된다.
장계리는 소위 ‘무(茂)·진(鎭)·장(長)’이라 하는 전북 동부 산간지대의 교통·상업의 중심지이자 물자 집산지다.
한국전기안전연합회 이상인 회장은 1950년, 장수군 장계면 장계리 신동마을 350번지에서 태어났다. 3남 1녀 중 장남이다.
이 회장은 집안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버님이 장계면 성당 병원에서 일을 하셨다. 성당에 병원이 있었는데, 옛날엔 규모가 컸다. 지금은 인구가 감소 돼 성당의 병원도 작아졌다.”
다음은 이 회장의 고향 자랑이다.
“장계면은 사과, 쇠고기, 오미자 등이 유명하다. 고추의 향이 참 좋다. 볼품도 없고, 상품 가치도 없어 보이지만 향과 맛이 일품이다.
잘 아는 얘기겠지만 우리 장수는 고산지대다. 해발 500m 고산지대는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기가 좋기 때문일게다.
문재인 정권 때,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국무총리에 올랐다. 이 시기에 장수에 대한민국 축구통합센터 유치를 추진했다. 센터를 세워지면 축구선수들의 전지훈련을 장수로 유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힘에 밀렸는지 센터가 경상도 쪽으로 넘어 갔다고 알고 있다.”

■ 전주공고 졸업 후, 한전·전기안전공사 등에서 근무

이상인 회장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장계면에서 나왔다. 고등학교는 전주에 있는 전주공고를 졸업했다.
이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뒤, 취업했다. 한국전력에서도 근무했고, 군산 화력발전소에도 있었다. 전기안전공사에 입사해 20여 년 근무한 뒤 정년퇴직했다.

■ 정년 퇴직 후, 설립한 ‘전력안전E&C’

평생 전기를 연구하며 살아온 덕분에 이상인 회장은 전기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특수한 기술 자격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정년 퇴임 후 설립한 주식회사 전력안전E&C는 서울시 관악구 보라매로에 있다. 현재 직원은 80여 명.
전력안전E&C는 전기 설비 안전 진단, 전기·통신·소방공사, 설계, 감리, 상주·비상주 안전관리 등이 전문인 중소기업이다.
이 회장은 전력안전E&C 대표이사 직함으로 지난 2016년,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전력산업진흥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다.

■ 사단법인 한국전기안전연합회 회장에 지난 5월 취임

한국전기안전연합회는 전기안전관리대행업의 발전과 회원 상호간 친목, 그리고 철저한 전기안전점검을 목표로 1996년에 창립됐다. 현재 전국 24개의 시·도회가 조직돼 있고 중앙회 사무국이 운영되고 있다. 등록 대행업체 수는 1,283개, 근무하는 직원이 도합 1만8,500여 명이다.
사단법인체다. 서울시 영등포구 경인로77길 19에 중앙회 사무국이 위치한다.
이상인 회장은 지난 5월, 정기총회에서 제10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취임 이후, 연합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렇게 포부와 다짐을 밝혔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전기사고로부터 예방하고 전기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안전관리 대행 업무를 수행하는 회원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어려운 작업 환경에서도 전기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안전관리자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안전관리업무가 전기안전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및 직무고시 등 규정을 따르게 돼 있으나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요구사항으로 대행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국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술인협회와 소통하며 전기안전공사나 산자부 등 관련 기관에 우리의 요구사항을 건의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대행수수료 품셈제정으로 투명한 전자입찰 시행을 준비하고 있으며 실태조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관계기관과 소통하고 있습다.
연합회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의 뜻을 이루려면 집행부의 부단한 노력과 전국 시·도회가 연합하고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선적으로 전국 시·도회 조직 활성화를 위해 시·도회 중심으로 정회원 수를 늘려 대행업계를 대변하는 명실상부한 안전연합회로 성장시키고 안전관리 법령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직무고시의 문제점 개정을 위해 그리고 대행수수료 제도화 및 안전관리 실태조사 문제점 개선을 위해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또한 기술력 향상을 위해 권역별로 점검교육과 기술세미나를 실시하고 중앙회와 각 시·도회가 양방향 소통을 통해 단합되고 힘 있는 안전연합회가 돼 회원여러분들의 권익신장과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자. 다 함께 화합하고 발전하는 한국전기안전연합회의 비전과 사명감을 가지고 회원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 現 사단법인 한국전기기술인협회 안전관리협의회 의장

이상인 회장은 지난해 사단법인 한국전기기술인협회의 안전관리협의회 의장을 맡았다.
한국전기기술인협회는 100만 전기인의 허브다. 전력기술관리법 제18조에 근거해 1996년 12월 23일 설립됐다. 사단법인체이지만 산자부의 공적 업무를 대행하는 단체다. 회원은 20만 명이다.

■ 직전 재경장수군민회 회장

한국전기안전연합회 이상인 회장은 재경장수군민회 직전 회장이다. 2019년 1월부터 2020년 12월 말까지 회장을 맡았다.
이 회장은 2년간 재경장수군민회 회장을 역임한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정년 퇴직을 한 뒤, 전북에서 서울로 올라와 보니 향우들이 참 열심히들 살고 있었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있어 주변 사람들, 특히 고향 사람들을 둘러 볼 수 있는 여건이 돼 향우회활동을 포함한 애향 활동에 적극 나섰다.
향우회 활동은 15년 정도했다. 그러던 중 재경장수군민회 회장을 맡으면서 전국 최고의 향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재경장수군민회는 향우들의 우애가 굉장히 좋다. 마치 형제지간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똘똘 뭉쳐있다.
강한 애향심과 결집력이 남다른 재경장수군민회를 전국 최고의 향우회로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호남의 여러 향우회, 특히 전북의 향우회 관계자들을 다수 알고 있다. 향우회의 살림살이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재정, 애향심, 결속력 등을 따져 주관적으로 종합 판단을 했을 때, 전북은 물론 광주·전남의 어느 지역 향우회 못지 않게 우리 재경장수군민회는 호남 최고의 향우회 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한다.”
이 회장은 장수군에서 수상하는 애향상을 받은 바 있다.

■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1950년생이어서 이상인 회장은 고희를 넘겼다. 이 회장의 인생 계획을 들어 보았다.
“칠순의 나이까지 나는 잘살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건강도 괜찮다. 남은 인생 향우들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 장수 출신 중 전기를 전공한 사람은 우리 회사에 우선적으로 취업시키고 있다.
앞으로도 고향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꾸준히 뒷바라지할 생각이다.”

■ 故 이희권 장군 추모비 건립추진위원장 맡아

지난 7월 8일, 장수군 장계중학교 교정에서는 故 이희권 장군의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1956년 4월 2일 봄날 해가 질 무렵,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장수군 4개 면(장계, 천천, 계남, 계북면)에 단 하나뿐인 장계중학교가 잿더미로 변했다. 6·25한국전쟁의 포화가 멈춘 직후여서 학교를 짓는 순서도 뒷전으로 밀렸다.
이 소식을 접한 이희권 장군은 고향에 대한 애착과 교육이 먼저라는 소명으로 즉각 공병대를 투입해 우선 천막 교실을 세우고 새 건물을 지었다.
이희권 장군은 1918년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서 태어났다. 1948년 국방경비대 창설에 관여했다. 육군포병학교장, 제9사단장, 제3사단장을 역임했다. 1961년 육본정훈감으로 예편했고, 2008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희권 장군 추모비 건립사업은 이상인 회장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이 회장은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 회장의 기금 300만 원 쾌척을 시작으로 모금 마감 시까지 1,430만 원의 건립 금액이 모아졌다.
추모비 제막식 날 이 회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우리가 지고 있던 빚짐의 일부를 벗는다고 생각하니 더욱 뜻이 깊다”면서 “비록 뒤늦게 장군님의 공적을 기리는데 동참하며 이것이 작지만 고향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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