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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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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후배 수필가로부터 사진 한 장을 카톡으로 전송받았다. 이파리 하나에 풋 열매 하나가 달린 나뭇가지였다. ‘산에 왔다가 눈에 보이기에 그냥 꺾었어요. 나중에 없어질 것 같아서요! 뭘까요?’ 하는 문자도 곁들여 있었다.
‘뭘까요?’라는 문구가 신경이 쓰였다. 나무의 이름을 몰라서 묻는 것인지, 아니면 그 나무를 알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물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꺾고, 열매가 잘 보이도록 이파리 위에 올려놓고, 작품처럼 카메라로 촬영한 걸로 봐 사연이 있는 나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암나무요’라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잠시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수필가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왜 깨금나무를 개암나무라고 부르느냐고 항의했다. 자기는 개암나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단다. 그러면서 산골마을에서 살던 초등학생 시절에 깨금나무에 얽힌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하늘이 높고 파란 초가을이 되면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으로 가는 대신에 친구들과 함께 책보를 등에 맨 채 마을 주위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해가 질 때까지 산을 샅샅이 뒤지며 깨금을 찾고 다녔다. 허기에 차 있던 아이들에게 깨금은 좋은 간식거리였다. 그래서 깨금나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년퇴임 후에 매일 화산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산책 중에 낯선 나무를 발견하면 카톡으로 전송하고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오랫동안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추억의 깨금나무를 만났다. 하도 반가워서 가지 하나를 꺾고, 촬영하고, 카톡으로 전송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개암나무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단다.
깨금나무를 잘 안다는 말을 듣고, 그 나무의 꽃을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열매만 따먹으러 다녔지 꽃을 보러간 일은 없었단다. 그 말은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매일 보는 나무를 처음 발견한 것이었다.
지역에 따라 깨금나무라고도 부르는 개암나무는 자작나뭇과 낙엽 활엽 관목이다. 야산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나무는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입춘이 지나고 산에서 제일 먼저 꽃을 볼 수 있는 나무이다. 꽃잎도 없이 애벌레처럼 나뭇가지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그 뒤를 이어 길마가지의 하얀 꽃과 연분홍의 진달래가 선을 보이고, 개나리와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운다. 그리고 화사한 벚꽃이 피면 화산공원은 완연한 봄이 된다.
개암나무는 화산공원의 봄의 전령사 중에서도 선두 주자임에 틀림없다. 그런 소중한 나무이니 지금부터라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고 불러주라고 당부하자, 고개를 흔든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어렸을 때부터 깨금나무라고 불렀던 것을 지금 이 나이에 개암나무로 고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단다. 한번 깨금나무는 영원한 깨금나무라고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이희근
전주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