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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칼럼-영화계의 거목 송길한 떠나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1.05 15:58 수정 2025.01.05 15:58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 되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괜히 바빠진다. 한국의 12월은 처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국회 의석의 3분의2를 넘볼 만큼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똘똘 뭉쳐 탄핵과 특검법을 양산해 냈다. 여기에 대응하는 정부는 거부권 행사를 무기로 대항했지만 예산 심의권을 가진 거대 야당은 재의 요구에 분풀이라도 하는 듯 대통령실을 비롯한 비위에 거슬리는 부처의 예산을 싹둑싹둑 잘라냈다. 사실상 정부 기능을 마비시킬 염려가 컸다. 윤석열정부는 이에 대하여 성숙한 협상력으로 정치를 풀어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초강경 수단인 비상계엄 선포로 맞섰지만 국회 계엄해제 결의에 맥없이 6시간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이 때부터 한국은 데모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광화문과 국회 앞은 윤석열 지지세력과 체포촉구 세력의 목소리에 파묻혀 사회 혼란을 야기시킨다. 대통령은 이미 국회에서 탄핵이 결의되어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으며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으나 헌재 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이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행의 대행으로 순번을 받았다. 그가 만일 한 대행처럼 헌재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다면 이제는 다시 사회부총리가 대대대행을 맡는 코메디에나 나올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해서 경제는 엉망진창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형편이다.

이런 판국에 세모를 즐겨야 할 갑진년 마지막 일요일 아침에 갑자기 특별뉴스가 터졌다. 엊그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객기가 추락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그나마 절반 정도의 승객이 생존했다는 국제 뉴스가 나와서 한 숨을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여객기가 태국에서 출발하여 무안공항에 착륙하며 새 떼와 충돌하여 큰 화재를 일으켜 181명의 승객 중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소식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간에도 TV는 시시각각으로 현지 상황을 화면에 담으며 열심히 보도 중이다.
 
그러나 나는 며칠 전 친우 송길한을 잃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나와 전주중앙초교때부터 한 동네에 살며 온갖 장난질을 치면서 살아왔다. 오목대 밑으로 철도가 있을 때에는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기차에 돌맹이도 던지는 위험한 장난도 쳤으며 젊은 시절에는 술에 젖어 그의 한탄도 들어줘야 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시나리오에 집념을 퍼붓더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흑조’로 당선했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나에게 뛰어와 밤새껏 통음했던 기억이 새롭다. 송길한은 그 후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성장하며 임권택감독과 동반하여 수많은 대작을 내놨다.

1980년 짝코, 1981년 만다라, 1985년 길소뜸, 1986년 씨받이 등 한국 영화사상 주름잡는 대작을 연속해서 선보였다. 영화나 연극은 시나리오나 극본이 관중의 흥미를 끌어야 하고 그 시절의 문화취향에 영합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송길한의 시나리오는 그의 거칠게 생긴 생김새와는 달리 매우 정제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한번 받기도 어려운 한국 최고의 영화상인 ‘대종상’을 시나리오 부문에서 두 번이나 받았으니 흥행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지만 폭음을 생활화했던 후유증인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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