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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성수의 시 감상 <심우장 툇마루에 앉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8.07 16:38 수정 2025.08.07 04:38

 
심우장 툇마루에 앉아 - 채민신

심우장 툇마루에 앉아
북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무언가 여전히 그곳에서 오고 있는 듯, 갈림길마다 사람들이 쉽게 가는 길을 택할 때, 만해는 가지 않는 길을 골랐습니다. 길 끝은 오직 침묵뿐일지라도, 그는 말없이 침묵 속을 걸어갔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조차 울컥한 듯, 검은 소낙비를 내리붓습니다. 두벌대 기단 위로 비바람이 사방에서 들이치고.애꿎은 툇마루만 젖어 듭니다.

노송 한 그루, 심우장의 문지기처럼 긴 팔을 뻗어 소낙비를 막아보지만, 억눌린 감정처럼 터져 나온 비는 뜰 안 가득 눈물처럼 고여 흐릅니다. 그 눈물은, 소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자들의 속절없는 후회일까요. 나라를 잃은 슬픔일까요.

북향으로 지어진 집은 잊지 않겠다는 의지였고
툇마루에 앉은 나는 또 묻습니다
지금도 소를 찾고 계십니까? 아니면 잊어버린
나라를 찾고 계십니까?

· 심우장尋牛莊 :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만해 한용운의 유택遺宅


□ 정성수의 詩 감상 □

시「심우장 툇마루에 앉아」는 만해 한용운의 마지막 거처였던 ‘심우장尋牛莊 ’을 배경으로, 그의 삶과 철학, 그리고 민족적 아픔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툇마루에 앉아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여전히 오고 있는 듯한 어떤 존재를 느낀다. 그 존재는 곧 만해의 정신이자, 조국을 향한 염원으로 읽힌다. ‘북향’이라는 건축적 상징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북쪽을 향해 지어진 심우장의 정신적 중심을 드러내며, 그것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역사적, 철학적 의지의 표현이다.
시인은 만해가 살아온 길을 ‘사람들이 쉽게 가는 길을 택할 때, 가지 않는 길을 골랐다’고 표현하며, 그의 결연하고 고독한 행보를 조명한다. ‘길 끝은 오직 침묵뿐일지라도’라는 구절은, 만해의 삶이 세상의 환호나 결과가 아닌, 실천과 고요한 저항에 기초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만해의 길은 요즘 세대들에게도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특히 시의 한가운데 쏟아지는 소낙비와 그로 인해 젖어 드는 툇마루, 뜰 안에 고이는 ‘눈물’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억눌린 민족의 슬픔과 시대적 회한을 은유한다. ‘소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자들의 속절없는 후회’라는 구절은 심우장의 의미인 ‘소를 찾는 집’과 연결되며, 인간의 내면 수양 혹은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한 지식인과 민중의 자책으로도 해석된다.
‘지금도 소를 찾고 계십니까? 아니면 잊어버린 나라를 찾고 계십니까?’라는 마지막 물음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만해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와 정신을 다시 찾아야 함을 암시한다.
결국, 이 시는 공간의 서정성과 역사적 의미, 인물의 철학적 깊이를 결합하여,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 사유와 성찰의 시로 읽힌다. 툇마루에 앉은 시인의 시선은 과거를 통과해 현재를 비추며,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소’와 ‘나라’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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