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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경제학의 시대는 끝났는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9.09 12:47 수정 2025.09.09 12:47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지난주 서울에서 계량경제학회 세계대회(ESWC)가 개최되♘다. 단일행사로는 경제학계의 가장 큰 행사로서 5년마다 열린다. 필자에게는 35년전인 1990년 바르셀로나 대회가 가장 인상깊♘다. 결혼 후 집사람의 미국입국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바르셀로나의 경제분석연구소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 대회가 열렸고, 당시 필자가 알고 지내던 경제학자들이 거의 참석했기 때문에 특별한 기억이 많을 수밖 에 없다. 이번 서울대회의 준비와 조직에 참여한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몇 년 전부터 수고를 많이 했을 것이다. 성공적 대회개최를 경하한다.
ESWC는 경제학자들의 학술대회다. 경제에 대한 얘기보다는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이번 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들 중에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보다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 게 좋은가를 분석하는 논문들이 더 많았다. 최근 경제학이 현실경제로부터 유리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학이 경제의 흐름에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뒷북만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사실 경제를 앞에서 이끌고 나가는 주역은 기업인들이고 이들이 활동할 무대를 열어주는 것은 정 치다. 정치가 시장의 경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혁신이 세상을 바꾼다. 이번 서울 ESWC에서 무대에 선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로빈슨 교수도 경제발전의 사회체제적 요인을 이야기하 면서, 경제성장에 몰두하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지위상승 기회를 붙잡아 성공을 이루어낸 현대그룹 창업 자 정주영 회장을 거론하였다. 로빈슨 교수는 경제발전에서 사회체제가 결정 요인이며 문화적 배경은 결정 요인이 아니라고 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개신교는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유교는 기여하지 못 한다고 봤는데 이는 오류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이슈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예를들 어 아직까지 이슬람권에서 괄목할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다. 왜 그럴까. 종교가 경제발전과 정말 무 관한 것일까. 물론 종교 자체보다는 종교에서 파생된 정치체제가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학이 현실경제와 항상 유리되♘던 것은 아니다. 백년 전에는 경제학이 세상을 풍미했다.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인 공산주의 혁명의 토대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제공했다. 노동자 가 생산한 가치를 자본가가 착취한 것이 이윤이라는 잉여가치설이 자본론의 핵심 메세지다. 혁명가들도, 공산주의 추종자들도 세 권으로 되어 있고 2천페이지가 넘는 난해한 자본론을 몇 페이지는 읽어봤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하던 시기,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고도성장 시 기에 정부재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이론적 토대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경제학이♘다. 이후 밀 튼 프리드먼 등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지나친 정부의존으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하였으며, 이 는 1980년대부터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정보통신혁명이 시작된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금융위 기가 발발한 2000년대 중반까지 약 30년간 지속된 대안정기(Great Moderation Period)에는 시카고학파 를 포함한 신고전파 경제학이 그 이념적 바탕이 되♘다. 그 이후 경제학이 경제운용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작고한 한 물리학자로부터 물리학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의 주장 은 음악이 베토벤 시대에 정점을 찍♘듯이, 물리학은 아인슈타인 시대에 정점을 찍♘다는 것이♘다. 지 나치게 과장되고 단순화된 주장이긴 하지만, 현하 세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게 과학보다 기술임을 부정 할 수는 없다. 세상은 과학이 추구하는 ‘왜’보다 기술이 추구하는 ‘어떻게’에 더 관심을 갖게 되♘다. 호 기심보다 효용이 앞서고 있다. 일기예보를 예로 들면 과학적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슈퍼컴퓨터로 데이터 를 돌려보면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되♘다.
경제학의 시대도 끝났는가. 경제학에는 과학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둘다 있다. 이론경제학의 시 대가 끝났다는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경제정책은 항상 필요하다. 경제정책이 잘못되면 경제가 엉망이 된다.
필자가 이번 서울 ESWC에서 발표한 논문은 공공재 재원마련을 위한 세금부과를 사회구성원들 간 의 협상으로 결정한다면 어떤 세금부과 원칙들이 성립할지 들여다 본 논문이다. 분석의 틀은 영화 ‘뷰티 플마인드’로 잘 알려진 수학천재 존 내쉬의 협상이론을 사용했다.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인들은 서론과 결론만 읽을 수 있다. 필자의 논문도 경제학과 현실세계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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