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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페르소나의 가면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1.01 16:40 수정 2026.01.01 04:40

 
페르소나의 가면들 - 박정순

노트북 모니터를 켠다. 정체불명 새들이 가득하다. 가마우지, 갈매기, 개개비, 거위, 고니, 곤줄박이, 기러기, 까마귀, 까치, 꼬리치레, 꾀꼬리, 꿩, 나무발발이, 논병아리, 느시, 닭, 독수리, 동고비, 두견, 두루미, 따오기, 딱따구리, 뜸부기, 마도요, 말똥가리, 매, 메추라기, 밀화부리, 발구지, 병아리, 부엉이, 비둘기, 뻐꾸기, 새홀리기, 솔개, 아비, 양진이, 어치, 오리, 오목눈이. 컴퓨터 화면이 정렬된 폴더들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중학교 삼학년 아들은 새들의 폴더 속에 음란물을 숨겨놓고 있다. 이걸 모른 척해야하나. 난감하다. 새들이 숲을 이룬 정글을 파헤치며 중요한 폴더 하나를 연다. 사건번호0666 폴더 안에는 아무런 자료가 없다. 아들이 분명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아내는 모처럼 처가로 떠났다. 혼자뿐인 방안에서 멍하니 출구 없는 천장을 바라보던 중, 갑작스레 전화가 울린다. 꿈을 꾸는 것처럼 수화기 너머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아니 모든 것을 안다. 과연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강기준 형사, 지금 어디야? 서장이 이번 주 안으로 보고서 제출하란 소리 못 들었어?
들었습니다.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초조하게 컵라면을 기다리다가 설익은 면말을 먹는 것처럼 곤욕스럽다. 인생은 매번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인해 고통스럽다. 불친절한 전화는 휴식을 방해한다. 찾으려 할 땐 찾을 수 없는, 필요 없을 때에만 찾아오는 일들. 나는 종종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잊어버린다. 서류가 어디 있더라. 십 년도 더 넘은 나이테가 박혀있는 갈색의 책상 서랍 속에서 종이뭉치를 꺼내든다.

머리털과 수염이 노인의 인중과 턱 주변에 자라난 듯 문경의 둔덕산은 듬성듬성한 나무들로 황량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폐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돌들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애처롭게 보이면서도 비대칭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은, 마치 세 살배기 아기가 만든 어설픈 레고 블록 성을 연상케 했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돌아가신 조부가 살던 시골집의 근방에 있던 기울어진 민둥산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사건 현장에 나왔다. 한 달 전에 이미 종결된 사건으로 서류를 폐기하려 했으나, 윗선의 개입이 있었던 모양인지 재수사가 요청되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자면 재수사를 한다고 해서 바뀔만한 내용은 없었다. 사건의 전모가 이미 언론에 모두 보도되었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기 시작했다. 관심에서 사라지는 기억들은 먼지 한 톨만도 못한 휴지통 파일들과도 같았다.
흑백텔레비전처럼 희미해진 기억을 뒤로하고 나신교회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예상외로 깔끔했다. 군데군데 무당거미들이 자기 집을 지어놓은 것을 빼놓고는. 저들도 살아야 하니까. 모든 생명체는 신이 창조한 백지수표가 아닌가. 그러니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지. 네모반듯한 강대상과 50개 정도 되는 장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은 마치 군사독재시절 군인들이 일렬종대로 서있는 느낌을 주었다.
과거를 묻어두면 편안한 인생이 될 터였지만,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아픈 건 붉게 입을 벌린 생채기들이었다. 장의자에 새겨진 상처들이 증인석에 앉은 것처럼 나신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사십대 젊은 목사의 자살이었다. 나신교회 담임목사인 나신성은 자신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마치 스스로가 예수라도 되는 것처럼.
이미 언론에 보도가 되었지만, 놀라운 건 타살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나신성이 혼자 폐 채석장에서 자살을 한 것처럼 보였다. 사건 현장에는 지문, 족적, 머리카락, 유전자 등의 흔적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홀로 쓸쓸히 십자가에 매달린 나신성의 가냘픈 육체 밖에는.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이 몇 있었다. 나신성은 유서에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장기를 사회에 기증한다고 남겨두었다. 그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분명 돈은 아니었다. 그는 돈에 관심이 없었다.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나누는 일을 좋아해서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위탁시설 등에 주기적으로 기부를 해왔다고 했다.
언덕배기 채석장 한가운데 높이 매달린 십자가에 피딱지가 붙어 있었다. 새빨간 피가 코팅된 비늘처럼 굳어서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비릿한 냄새가 은은한 바람을 따라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건 현장은 다시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 기분 나쁜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다. 기분이란 건 원래 주관적이며 모호했다.
강 형사님, 점심시간인데 밥 먹고 하시죠?
박 형사 먼저 먹어. 나는 속이 좀 안 좋네.
차안으로 들어와 아침에 먹다 남긴 김밥을 베어 물었다. 쌀, 당근, 오이, 햄, 계란 등의 내용물들이 차가운 잔모래 같이 씹혔다. 속이 안 좋아도 먹어야 했다. 무엇이든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어머니의 훈계가 어지럽게 맴돌았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나 점심 먹고 있는데, 왜? 애가 학교에서 싸웠다고? 나는 지금 못가. 현장에 나왔는데 어떻게 해. 알았어. 울지 말고. 내가 다녀올게. 그래, 끊어.
사건현장은 늘 설상가상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누구의 인생이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에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매듭은 풀리지 않고 꼬여만 갔다. 꼬이고 꼬인 매듭은 잘라내는 게 옳을까. 그러나 쉽사리 잘라내지 못하는 매듭도 있다. 그냥 꼬인 매듭을 끌어안고 사는 방법 밖에는 딱히 떠오르는 대안이 없다.
하나뿐인 아들은 삼대중학교 일진이었다. 비리비리한 중학생들 무리 속에서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전학만 여섯 번이나 갔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갔나? 사실 얼마나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옮긴 학교에서 적응을 잘하면 좋으련만 인생은 상상처럼 조립되지 않았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정문을 들어서자 옛 추억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나는 학급에서 잡동사니 같은 아이였다. 특별하지 않아서 그런지 교무실에 불려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어서 교무실에 불려가야 했다. 그 때 해보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해보라는 신의 뜻인 것만 같았다.
담임선생님,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아이하고 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죄송한 마음은 인생에서 필수옵션이었다. 언제든지 꺼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비장의 카드였다. 이런 아비의 마음을 아들은 모를 것이다. 알 리가 없지. 비정상 꼴통이니까. 이런 모진 생각들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래도 내 아들이었다. 내 아들은 내가 감싸야한다.
왜, 그랬니?
아, 개빡치네. 아빠는 왜 왔어요?
뭐? 이 새끼가.
신경 꺼요. 어차피 똑 같아요!
아들은 나를 전혀 닮지 않았다. 말투며, 행동이며, 옷차림, 특유의 고집스러운 표정 등의 모든 게 달랐다. 화난 마음이 정수리에까지 차올랐다. 나를 닮았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이기적인 마음만 커져만 갔다. 마치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느낌과 같았다.
인마, 뭣이 어째?
아들을 차에 태우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얼른 집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사건현장으로 가봐야 했다.
아빠, 운전 좀 똑바로 해요. 저기로 가야죠!
야! 닥치고 있어!
나도 몰래 화가 솟구쳤다. 화는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숨겨지지 않았다. 숨은 것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아들도 나도 그렇게 숨김없이 살아왔다.
그리고 너, 앞으로 아빠 노트북 만지지 마. 폴더는 왜 그렇게 마구잡이로 만들어 놓는 거야!
시발, 좆같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에 둔덕산 채석장으로 돌아왔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스치는 바람이 시원치만은 않았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억눌린 마음이 냉큼 소리를 내었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십자가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둔덕산 아래에 위치한 나신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다. 담임목사였던 나신성은 설교시간마다 매번 똑같은 성경구절을 강조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가 선포한 모든 설교에는 요한복음 15장 5-7절 성구가 나왔다. 나신성이 이 성구를 외치면 신도들은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나신성은 아멘 소리가 작으면 더 크게 외치라고 훈계를 하곤 했다. 녹음된 파일에 등장하는 신도들은 자신의 감정을 아멘에 담아 절규하고 있었다.
강 형사님, 무슨 생각하세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이게 무슨 뜻일까?
제가 이래봬도 교회 집사잖아요. 그건 사람이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사람이 예수님 안에 거한다고?
아, 이게 설명이 좀 쉽지 않은데, 예수님이 내 안에 있고 나도 예수님 안에 있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니까?

나도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녀봤다. 그런데 교회에서 하는 설교를 들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런 문장들을 그냥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글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예배당 구석에 앉아 무작정 설교를 듣곤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해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런 생각만 하다가는 서장님께 혼쭐이 날것이다. 갑자기 등짝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일단 사람들을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테니까. 누구를 만나야 할까. 나신성과 가까이 지낸 나신교회 신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주연희 씨, 사건에 대해 할 말 없습니까?
형사님을 진작 만나보고 싶었어요.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거든요.
그래요? 잘 되었네요. 이야기를 좀 들어봅시다.
아이보리로 변색된 하얀색 티셔츠와 펑퍼짐한 점퍼, 그리고 군데군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짧은 단발인데, 사건이 있기 전에는 긴 생머리였으나 충격으로 짧게 다듬었다고 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샴푸 향기는 풋풋한 느낌을 한층 노골적으로 풍기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주연희. 나신교회의 청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 했다.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난 해 겨울 12월 25일에, 제가 나신성 목사님께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네? 정말인가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앳된 소녀의 가녀린 숨결이 나의 숨을 턱하고 막아버렸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하기야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쌔고 쌨지. 아무리 그래도 어찌 목사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그물처럼 얽히고설키는 순간,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울음을 멈추었다.
이야기는 두 시간 정도 이어졌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나신성 목사의 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주연희에게 생일케이크를 사들고 올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부탁받은 장소는 모텔이었다. 주연희는 평소에 목사를 의심하지 않았던 터라, 그저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케이크를 들고 문을 여는 순간, 나신성 목사는 주연희의 팔을 잡고 힘을 주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 축하파티를 하자고 했다. 다른 청년들도 올 것이라는 거짓말과 함께. 주연희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모텔에 들어갔고, 그날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나신성 목사는 주연희와의 성관계를 끝내고, 거울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런데 그 가면을 벗겨주신 분이 예수님이야. 오늘 예수님이 네 안에 들어간 거야. 그리고 너도 예수님 안에 들어온 거고. 나의 예수님이 네 안에 있고, 네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어. 이제 우리는 하나야.
주연희와 이야기를 마치고 난 후 정신이 몽롱해졌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강기준이다. 강기준은 강기준인가.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거울에 비친 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담배 연기에 가려진 못난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속이 매캐해지더니 헛구역질이 나왔다.
사건정보를 좀 더 얻기 위해 주연희의 오빠인 주연호를 만나야 했다. 그는 나신교회 청년부 회장이었다. 그런데 뭔가 수상쩍은 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일을 숨기고 있었을까. 나신성이 결국 자살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검은 색 슈트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온 주연호는 마치 여의도의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깔끔한 옷매무새 사이로 레몬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분명 교회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을 법한 위엄이 느껴졌다. 주연호를 바라보며 잠깐 생각에 잠긴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뭐라고? 나 지금 바빠. 아이 문제는 나중에 집에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여기 문제도 심각하다고!
가뜩이나 머릿속이 뒤엉켜버렸는데, 아들이 가출했다는 아내의 말을 들었다. 좌우 뇌가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주사기 바늘을 인정사정없이 정수리에 꽂아 넣는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어쨌든 지금은 주연호에게 집중해야 한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관자놀이를 엄지와 중지로 짓눌렀다.
주연호 씨, 제가 주연희 씨로부터 나신성 목사의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계셨죠?
네.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나요? 이 사건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내용인데요!
그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친동생이잖아! 동생 일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
주연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협조를 철저히 하겠으니,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는 불러달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 의자가 빙그르르 돌면서 머릿속의 감정들도 빙빙 돌고 있었다. 삼십 년 형사 짬밥으로 뭔가 수상한 점이 느껴지긴 했다. 그런데 그게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강 형사님, 수사는 잘 되어 가십니까?
그렇지 뭐.
바람도 쐴 겸, 짜장면이나 먹으러 가시죠.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그 때는 돈이 없어서 일 년에 한두 번 먹는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자주 먹어 지겨운 음식이 되어 버렸다. 기름기 가득한 고기 냄새와 비릿한 단무지의 냄새가 얽혀있는 허름한 중국집에서 허겁지겁 짜장면을 들이켰다. 생각해보니 오늘 제대로 먹는 첫 끼였다. 검은색 양념이 이렇게 맛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만약 짜장면을 원시인들에게 가져다준다면 흉측한 음식이라고 내다 버릴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는 다 알 수 없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강 형사님, 제가 요즘 교회를 다니고 있거든요.
그래?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공부를 좀 했어요. 그런데 교회사를 보니까, 이단들이 참 많았더라고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나야 당연히 모르지.
영지주의라는 게, 가현설을 주장하는 이단인데요. 예수님이 외견상 사람으로 보인 것뿐이지, 실제로는 육체를 입은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이단이 있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들었는데,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예수가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나신성이 영지주의에 심취해 있었다면 그는 자신 안에 예수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순간 갑자기 머리에 번개 같은 빛이 번쩍였다.
나 좀 갑자기 가봐야 할 데가 생각났어. 계산 좀 해줘. 다음에 내가 살게!

무작정 달려온 둔덕산은 고요했다. 그 아래 나신교회는 이젠 폐가처럼 쓸쓸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교회마당에는 찢어진 현수막 쪼가리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멀리서 누가 폐기물을 태우고 있는지, 고약한 고무냄새가 살을 태우는 듯 풍겨나고 있었다. 만약 이 교회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라면. 교회 안에 진실이 숨어 있을 텐데. 이러한 생각에 빠져들자, 나는 미친 사람처럼 교회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몇 차례 현장조사가 이루어진 이후라 나올 것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법한 직감이 발동했다. 자꾸만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교회 장의자의 생채기를 손끝으로 느껴보았다. 나무는 이미 죽어서 의자가 되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었다. 생명? 모든 생명은 흙으로부터 나오지 않는가. 나는 교회마당으로 나왔다. 교회 현관 앞에서 축축한 흙 마당을 바라보았다. 교회마당에는 현수막을 걸기 위해 심겨진 소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소나무는 생명이 있는데, 저 소나무를 누가 심었을까.
미친 사람처럼 소나무 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뭉툭한 손가락으로 소나무 뿌리를 들춰냈다. 이슬에 젖은 흙은 부드러워 파헤치는 것이 수월했다. 십오 분 정도를 파헤치자 무언가 손끝에 걸리는 느낌이 났다. 교회 장의자의 표면과 같은 느낌의 감촉이었다. 손톱 끝에서 딱딱하고 생기 없는 물건이 느껴졌다. 그것은 타임캡슐이었다.
딱딱한 상자 속에는 스프링제본의 일기장이 가지런히 포개져있었다. 나신성의 일기장은 시공간 여행을 안내했다. 나신성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부터 교회를 하려고 결심한 이야기, 결혼을 못한 이유,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 교회를 운영하는 방안, 신도들을 심방한 내용 등이 적막한 우주를 떠도는 행성들처럼 불규칙적으로 적혀 있었다.
초초한 마음으로 주연희의 이름을 찾았다. 나신성이 주연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중학생이었다. 풋풋하고 수줍음이 많은 소녀의 모습. 나신성은 첫 만남 때부터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나신성은 중학생을 여자로 보고 있었다. 그녀 때문에 웃게 된 일. 그녀 때문에 속상했던 일. 그녀 때문에 마음 조렸던 일. 여러 감정들이 일기장에 새겨져 있었다.
나신성과 주연희의 관계는 복잡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주연희가 나신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신성이 주연희를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연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서로 좋아서 데이트를 즐긴 일들도 적혀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둘은 연인관계였다. 주연호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을까?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주연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님, 무슨 일이시죠?
주연호 씨,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나신성과 주연희 씨가 서로 연인관계였나요?
둘이 사귄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연인이라고 볼 수 있었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교회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주연호는 알고 있었다. 나신교회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나신성과 주연희는 연인관계였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연희의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인관계에서의 성폭행이라. 법리적 문제를 다투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레 두통이 몰려왔다. 주연희가 나신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나신성을 사랑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왜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연인관계를 맺었나.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뾰족한 바늘처럼 뒷목을 콕콕 찔러댔다.
극심한 두통으로 인해 현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평소 같으면 시끄러울 집안이 조용했다. 아들이 없는 집은 생경했다. 아들이 방에 있었다면 대중가요가 크게 들렸을 텐데. 노랫소리가 이명처럼 들리는 듯했다. 아들의 육두문자들이 마음에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면 가만두나봐라. 컵라면 뚜껑을 열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았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김치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사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영양제들 중에 타이레놀을 집어삼켰다. 라면 먹겠냐고 물어보는 게 플러팅이라는 식상한 말들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성관계가 빨라서 고등학생 때까지 경험을 못한 애들은 창피해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속궁합을 맞춰보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요즘 시대는 자신을 잘 숨길 줄 알아야 결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후루룩 라면을 목구멍에 우겨넣으며 젊은 시절 아내와 첫 경험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아내는 결혼 전까지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당장 급했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를 차지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귓가에 짜릿한 한 문장이 꿈처럼 들렸다. 기준 씨, 라면 먹고 갈래요? 순진했던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촉촉한 감촉이 느껴지는 아내의 목소리는 딱 그 때뿐이었다. 컵라면 한 그릇을 다 해치우고 나니 식곤증이 몰려왔다. 모처럼 만에 식탁에 엎드려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주연희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왔다. 손님을 맞이하려고 급하게 둥굴레차를 우려냈다. 아리따운 여성이 칙칙한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윽한 샴푸 냄새가 풍겨져 들어왔다. 밤새 잠을 설쳤는지, 눈가에 시퍼런 그늘이 진하게 둘러쳐져 있었다. 그녀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주연희 씨, 나신성과 연인 관계였더라고요? 왜 이 사실을 숨겼나요?
…….
연인관계인데, 성폭행이 가능한가요?
…….
어떻게 가능한 거죠?
그건, 제가 가스라이팅을 당했기 때문이에요.
가스라이팅?
주연희는 가스라이팅의 증거로 나신성의 설교를 지목했다. 나신성의 설교를 듣다보면,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믿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신성이 예수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주연희는 나신성의 설교 속에서 항상 반복해서 강조되는 구절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요한복음 15장 5절이었다. 나신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은 모두 이 구절을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주연희 씨, 내가 성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성관계에요.
가스라이팅으로 원치 않은 성관계를 가진 건가요?
네. 그걸 깨닫게 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구죠?
오빠에요.
오빠? 주연호?
네. 오빠는 신학생이었어요. 학교를 중퇴하고 목사가 되길 포기하긴 했지만요. 그 때 오빠는 나신성 목사님의 설교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제게 알려줬어요.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죠. 그런데 계속 듣고 있으니까, 마치 퍼즐이 맞아떨어지듯이 오빠의 말이 다 사실이더라고요.
갑작스레 두통이 사라지고 단순명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퍼즐이 다 맞춰졌다. 주연희는 나신성의 놀이기구였다. 나신성은 치밀한 계획 속에서 주연희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환심을 샀던 일, 관심 없는 척 질투를 유발했던 일, 성경을 설명해준다고 하면서 수시로 접근했던 일, 상담을 한다는 핑계로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했던 일. 그 모든 일들이 나신성의 가스라이팅 수법이었다.
그렇다면 나신성은 주연희의 변화된 태도 때문에 십자가에서 자살을 한 것일까. 그러한 추론이 가장 타당했다. 나신성은 신도들에게 자기 자신을 감추려 했을 거다. 자신이 본 모습이 탄로되기 전에 자기희생이라는 명분으로 목숨을 끊은 것일 게다.
저 멀리 둔덕산에 불어오는 초겨울 바람이 매섭게 느껴졌다. 거기에 십자가 세 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나신성은 그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사랑 때문에, 신앙 때문에, 자기 자신 때문에 그는 자신을 버렸다.
둔덕산 주변에는 벌들이 많아서 양봉을 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들은 벌집을 보존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잘 지켜줘야 했다. 그러나 말벌은 꿀벌을 공격하기 때문에 없애버려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꿀을 얻어낼 수 없고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양봉업자들은 이기적이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꿀벌과 말벌을 이용했다. 어쩌면 꿀벌과 말벌에게 대하는 태도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 기준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기준을 만들었다. 꿀벌이 사는 방식이 있고 말벌이 사는 방식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나는 학창시절에 건강이 좋지 못했다. 자꾸만 기침을 하니까, 반 애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놀리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기침은 더럽다. 기침을 하는 사람은 죄인이다. 이런 논리였다. 그들의 기준은 나의 기준과는 달랐다.
나는 그들이 싫었다. 그들의 정해놓은 기준이 싫었다.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서 누군가를 마녀 사냥하는 잔인무도한 놀이가 싫었다.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는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누구에게도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만의 기준으로 살고 싶었다. 강기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개명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오해하곤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트라우마를 오해하곤 했다. 내가 좋아했다가 싫어하면 전부 다 싫어하는 줄 알았다. 반면 내가 싫어했다가 좋아하면 전부다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나는 싫어하면서도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하면서도 싫어할 수 있었다. 나는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기준이었다.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기준을 가면들 속에 숨겨두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들도 가면을 쓰고 있었다. 문제는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의 알맹이를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여주면 다치니까. 아프니까. 허무해지니까. 그런 이유들로 진실은 항상 숨겨져 왔다.
사무실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책상위에 쭉 뻗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순간, 사탄이 하늘에서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나신성은 그저 가면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기도한 것이었다. 그는 가면이었지만, 나름의 양심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가 십자가에서 자살한 이유였다.

며칠이 지나고 갑작스레 주연호가 찾아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더 할 말이 남아있을까? 그를 위해 둥굴레차를 우려내며 사무실을 정돈했다. 이미 보고서는 완성되었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변덕맞게도 그가 귀찮아졌다. 더 이상 목구멍에 영양가 없는 음식을 우겨넣고 싶지 않았다.
주연호 씨, 더 할 말이 남아 있나요?
그게.
뭐든 말해보세요.
자수를 하고 싶습니다.
자수요?
제가 나신성 목사를 죽였습니다.
뭐라고요?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목덜미를 지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캄캄해지더니 지나온 모든 일들이 블랙홀처럼 새카맣게 빨려 들어갔다. 주연호는 자백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범인이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는 나신성을 죽인 것일까. 동생 주연희가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나신성을 십자가에 매단 것일까.
사건의 전모는 이러했다. 주연호는 나신성을 찾아가 멱살을 잡고 따졌다. 어떻게 동생한테 이럴 수 있냐고, 당신 목사냐고, 울부짖으며 따졌다. 그러자 나신성은 조커와도 같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저 자신은 예수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한 주연호는 나신성을 가격했다. 나신성은 거의 죽은 상태가 되었다. 그 때 나신성은 자신이 죽어도 다시 살아날 거라고 했다. 다시 살아나서 주연호의 인생을 짓밟고 파멸해버릴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주연호는 나신성을 땅에 묻으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두려웠다. 나신성의 시체가 발각될 경우 자신이 용의자로 몰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나신성의 온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둔덕산에 십자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신성의 말대로 초라한 십자가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주연호는 나신성을 가운데 십자가에 매달았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뾰족한 대나무 막대기를 가져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착용했고, 신발에는 검정 비닐 봉투를 씌웠고, 머리에는 의료용 모자를 눌러쓴 채 모든 일을 치밀하게 감행했다.
국과수에서 주연호가 나신성을 가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가격을 했다면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발견되지 않은 내상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신성은 죽은 척을 했던 것일까. 모든 의문들이 빙빙 돌며 하수구처럼 빨려 들어갔고, 머릿속은 텅 빈 무중력 우주공간처럼 공허하기만 했다. 그 때 갑작스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강 형사님, 감식반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는데요?
어떤 거죠?
대나무에 찔린 자국의 압력을 분석하니, 남성이 아닌 여성이 찌른 것 같다는 소견입니다.
여성이라고?
네, 이게 대나무가 사람 몸에 깊숙이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보통 여성의 경우는 대나무를 한 번에 찌르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대여섯 번을 찌르게 됩니다. 그래야 겨우 깊숙하게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나신성의 몸에서 그런 흔적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속으로 외쳤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연호가 자수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사건은 종결된 것이었다. 이제 사건자료를 정리해서 윗선에 넘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이 생겼다. 혹시 주연희가? 그럴 리 없어. 그녀는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이제는 그냥 쉬고 싶었다. 세브란스 응급실에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강 형사님이신가요?
왜 그러시죠?
주연희 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습니다. 유서를 남겼는데,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한 줄 유서라고 하네요.

아내가 없는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는 별반 흥밋거리가 없다. 성탄캐럴도 시들시들해졌고, 남녀 간의 애정행각도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다.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공휴일인데도 방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혼자서 제주도로 떠났다. 집을 나간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가에서 쉼을 누리겠다는 아내의 계획이 성공하길 바랄뿐……. 불현 듯 남이 되어버린 아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무언의 목소리다. 아들이 쓰고 있는 서투른 가면도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리라.
이제 혼자서 뭘 할까? TV? 영화? 혼술? 사우나? 친구만나기? 뭐 하나 딱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이리 저리 방바닥 위에서 뒹굴뒹굴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주연희를 떠올린다. 아이보리로 변색된 하얀색 티셔츠와 펑퍼짐한 과잠, 그리고 군데군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 짧은 단발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샴푸 향기. 풋풋한 느낌을 한층 노골적으로 풍기고 있는 주연희. 갑자기 그녀가 생각난다.
노트북 모니터를 켜고 정체불명의 새들이 꽥꽥거리는 정글 숲을 지나 사건번호0666 폴더를 더블클릭한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뜬금없이 오목눈이 폴더가 눈에 들어온다. 이건 뭔가. 신기하게도 사건자료가 들어있다. 찾으려고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필요 없어진 지금에서야 얼굴을 드러낸다. 폴더 안에 파일을 열어본다. 그리고 주연희의 앳된 얼굴을 본다. 그녀의 젊음을. 풋풋함을. 생기를. 샴푸 향기를. 그리고 내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분출한다. 마치 나의 가면들 중 하나를 파괴하듯이.

<당선소감>
하나님께 영광을, 부모님께 존경을, 은사님들께 감사를, 사랑하는 아내에게 눈물을 고이접어 올린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이 아래의 습작 시를 드린다.

사랑에게 –요일 4:7-8

당신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밖에도 있습니다. 당신은 내 맘의 파도를 잔잔케 합니다. 어떤 세상의 시련도 요동치 못합니다. 나는 당신을 이유로 살아갑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지요.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이슬처럼 젖어듭니다. 당신의 향기는 이른 꽃보다 진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사탕처럼 달콤합니다. 나는 매일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내 마음을 듣고 계신지요. 내 기도를 알고 계신지요. 나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당신은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은 진짜 사랑입니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박정순 약력
1983년 서울 출생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경희사이버대학원 문예창작과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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