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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칼럼-비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4.12.12 16:41 수정 2024.12.12 04:41


배귀선 
시인

봄볕을 갈아엎는다. 몇 삽 뜨지도 않았는데 등줄기에 땀이 흥 건하다. 더하여 등허리에 혀 차는 소리가 무겁게 얹어진다.
집 앞을 지나는 동네 어른들의 인정 어린 간섭인 셈인데, 길갓집 에 사는 매화나무며 푸성귀들은 봄부터 동네 어른들의 입방아 에 몸살을 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두나무와 매화나무에 달린 열매가 부실하고 얽히고설킨 나뭇가지 그늘 때문에 푸성귀들 마저 시들하니 농사의 고수들께서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주인 잘못 만난 죄로 우리 집 텃밭 풋것들은 늘 눈총을 받는다.
농한기인 겨울이면 잠잠했다가도 봄부터 가을까지 울타리 너머로 던지는 동네 어른들의 입방아가 이젠 그리 고깝지 않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모른 체한다.
부실한 수확이면 좀 어떠 랴. 어설픈 변명 같지만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것은 공중에 그리 는 수채화를 감상하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허공을 더듬어 제자리 찾아가는 저들만의 생을 인정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기 도 하다.
작고 볼품없는 매실일망정 봄기운을 우려내는 일이 운명인 것처럼 어머니의 가난도 그러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어 머니가 쌀이나 콩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갈 때면 마냥 좋았다. 가끔 입에 넣어주는 주전부리 때문이었다.
그런 내 기분과는 달 리 됫박쌀을 내다팔러 가는 어머니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머니는 품삯을 돈으로 받기도 했지만 현물로 받아올 때도 있 었다. 한 됫박 한 됫박 모은 곡식은 가족의 식량이자 가끔 내 학 용품이 나오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때, 변변한 색연필 하나 없 는 미술 시간은 참 싫었다.
그림을 연필로 그리던 나는 크레용 을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장이 서는 일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니는 미제마크가 찍힌 밀가루 부대에 쌀을 담았다 덜어냈 다 몇 번을 반복했다.
망설임을 이내 머리에 이고 나서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는 짠 내가 났다.
읍내에 다다르면 일명 아가리패*라 부르는 사람들이 달려와 곡물을 서로 사려했다. 싸전이 있는 부안극장 앞은 곡물을 팔러 나온 사람들을 기다리는 아가리패 아주머니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촌에서 가지고 나온 곡물을 싼값에 사서 되팔아 이윤 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됫박으로 쌀의 양을 측정한 다음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어머니와 덜 주려는 아가리패 간의 실랑이는 지루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극장 옆 풀빵 장수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몇 푼의 동전을 더 받는 것으로 흥정을 마치고 그 돈으로 풀빵을 안겨 주었다.
다른 곳의 빵보다 유난히 고소했던 부안극장 앞 풀빵.
빵틀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는 들어가는 목소리 로 빵틀에 바르는 저 기름은 무슨 기름이냐며 풀빵 장수에게 물 었다.
혹시 풀빵 장사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나는 반가운 마음 에 귀를 세웠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학교 앞 문구점에 데려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 던 12색 크레파스를 사주셨다.
처음으로 갖게 된 크레용, 그 황 홀한 색에 취해 있는 나를 끌고 어머니는 차부 근처 푸줏간으로 들어섰다. 정육점 도마에는 고기가 쌓여 있었다. 어머니는 푸줏간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망설이는가 싶더니 돼지고기 반 근을 주문했다.
칼이 지나간 뒤 주인의 손에 들려진 살코기는 주먹만 했다. 누런 종이에 둘둘 마는 푸줏간 주인의 손을 바라보며 어 머니는 모기만 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자씨, 비계 쪼까 더 주먼 안 되겄소?”
정육점 주인은 어머니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흔들 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통사정했다. 인상을 찌푸리던 주인은 귀 찮은 듯 수대에서 비계 한 덩이를 칼끝으로 찍어내더니 얹어주 었다.
반 근의 고기는 비계를 얻기 위한 푸줏간 주인과 어쩔 수 없는 거래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그 후로 어 머니는 정육점에서 살코기보다는 같은 돈으로 양 많은 비계를 사왔다.
그런 날은 장작을 지피고 솥뚜껑을 뒤집어 기름을 내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부잣집처럼 고기 냄새가 자주 났다.
비계 에서 나온 기름은 부침개를 부치거나 시래기를 자박자박 조릴 때 어머니만의 고소한 양념이 되어주었다.
텃밭에 아직 고추 두럭을 다 세우지 못했는데 핑곗거리처럼 비가 내린다. 잘됐다 싶어 삽자루를 놓고 참새가 방앗간 들듯 막걸리를 찾아나선다.
삼거리 슈퍼에 다다르기도 전에 부침개 냄새가 마중한다.
무엇보다 비 오는 날의 부침개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슈퍼라고 해봐야 오래된 과자 몇 봉지와 막걸리, 소주, 맥주 몇 병이 전부다.
이곳은 생전의 어머니 닮은 냄새가 있어서 좋다. 비계 기름처럼 응고된, 가난했던 어머니의 기억. 그 기억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봄날, 비계를 눌러 기름을 내던 어머니의 꼬 순 손길이 아프다.
* 아가리패 : 필자의 어머니가 썼던 말로 입심 좋은 사람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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