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 470원대 중반까지 치솟으며 외환시장 불안이 장기화되자, 정부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은 24일 ‘외환시장 안정과 국민연금 수익성 확보’를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이번 협의체 가동은 최근 들어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원화 환전 수요가 늘어나면서 외환 수급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이날 환율이 장중 한때 1 477원대까지 올라왔으며, 협의체 발표 직후 소폭 반락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협의체가 논의할 주요 안건 중 하나는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활용이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해외자산 일부를 달러로 팔아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달러 공급 확대를 통해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추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은 8월 말 기준 전체 자산 약 1 322조원 중 해외투자 비중이 43.9%에 이르며, 해외 자산 규모가 약 581조원에 달한다. 해외투자와 연계된 환전 수요가 크다는 점에서 외환시장 변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하나의 방안으로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외환스와프 계약의 확대·연장이다. 현재 두 기관은 650억 달러 한도의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으며 계약이 연말까지로 돼 있는 상황이다. 스와프 계약을 통해 원화 매도·달러 매입 수요를 축소시켜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협의체는 단발성이 아니라 외환시장 안정과 기금 운용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구조적 장치”라며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유지하면서도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양쪽 간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자산의 일부 매각이나 달러 공급 방안에 나설 경우, 기금의 장기 수익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환헤지는 비용이 드는 행위로, 지나친 헤지는 기금 수익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이나 글로벌 금리·달러 강세 국면이 유지될 경우, 단순 국내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외환시장 참여자들은 “정책 메시지와 실물 수급 여건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환율 상단은 제한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협의체 구성 직후 외환시장에서는 ‘정책 대응 의지’가 반영되면서 환율이 소폭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속 가능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정례협의체 체계를 마련하고 향후 수시로 시장 상황과 기금 운용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번 움직임은 국내 거액 기금과 외환정책이 맞물린 새로운 정책 지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국민연금은 단순히 기금 운용 주체만이 아닌 외환시장 안정의 잠재적 파트너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시장 안팎에서는 “가입자 수천만 명의 기금이 외환정책의 변수로 고려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협의체 논의는 연말까지 구체적 제도 설계와 정책 운용 방안으로 이어질 전망이다./서울=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