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
한국탄소산업진흥협회 부회장/공학박사
본지 ESG 전문기자
“나는 리버풀에서 태어났지만, 함부르크에서 자랐다.” 20세기 대중문화의 전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남긴 유명한 회고는 함부르크가 지닌 역동적인 수용성과 성장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는 비틀즈의 선율이 흐르던 수용성이 넘치는 리퍼반 거리를 넘어선다. ‘물가에 있는 녹색 도시(Green city by the water)’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도시 공간 자체를 인류가 꿈꾸는 최고의 가치인 ‘건강도시’로 치환하는 거대한 실험을 성공시키고 있는 것이다.
함부르크의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세월의 숨결을 머금은 건물의 구리 지붕들이다. 유럽의 유서 깊은 시청사와 건축물들은 시간이 흐르며 산화되어 청록색의 ‘파티나(Patina)’ 층을 형성하는데, 이는 금속을 보호해 건물을 영구적으로 지탱하는 갑옷이 되어준다. 이 고풍스러운 색채 아래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알스터(Alster) 호수와의 만남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필자는 하노버 메세(Hannover Messe)를 여러해 참석하게 되면서 함부르크에 비즈니스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실리콘밸리도 따뜻한 날씨가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곳도 위도에 비해 따뜻한 기후에 놀랐다. 북해에 가까이 있지만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이른 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꼭 한번 재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였다. 과거 외적을 막는 해자이자 식량을 생산하는 방앗간의 동력이었던 이 알스터강 물줄기들은, 이제 도시의 생존을 넘어 시민의 삶을 보듬는 핵심적인 ‘건강 인프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함부르크는 호수와 운하라는 ‘물 인프라(Blue Infrastructure)’를 도시 면적의 무려 40%에 달하는 녹지망인 ‘그린 네트워크(Grünes Netz)’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도시 설계가 곧 최고의 보건 정책이다. 그린 네트워크와 HiAP의 조합된 도시다. 함부르크의 변화에서 주목할 지점은 2014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던 ‘그린 네트워크’ 계획이다. 이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수준을 넘어, 도시 내부의 공원과 광장, 외곽의 숲을 호수 및 하천과 촘촘하게 연결하는 거대한 생태적 혈관망을 구축한 사업이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 대신 숲길과 수변 축을 따라 일터를 오가고 일상을 영위한다. 이른바 ‘액티브 씨티 마스터 플랜(Active City Master Plan)’은 도시 설계가 곧 최고의 보건 정책임을 증명한다. 함부르크 지자체는 모든 시민이 거주지 인근에서 물과 녹지를 누릴 수 있도록 최소 요구 사항을 계산해 정책에 반영하는 ‘모든 정책에 건강을(HiAP, Health in All Policies)’ 원칙을 철저히 고수한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분담률을 9%에서 18%로 두 배 높이기 위해 매년 500만 유로를 자전거 도로망 확충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행정적 목표는 시민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동시에 도심 공기질을 개선하고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그린카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차를 사면 체중이 늘어난다는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함부르크는 ‘걷고 싶고 자전거 타고 싶은 환경’이라는 근본적인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풀(PULL) 방식의 문제해결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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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모델의 진정한 힘은 행정의 일방적인 주도가 아닌, 시민 사회의 조직적인 참여와 견제에서 나온다. 2002년 지자체가 ‘성장하는 도시’라는 미명하에 양적 팽창 전략을 추진했을 때, 시민과 환경 단체들은 이에 맞서 ‘미래 위원회(Zukunftsrat)’를 결성했다. 이들은 행정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으면서도 철저히 독립된 지위를 유지하며 도시 개발 과정을 감시했다. 특히 2003년부터 매년 발행하는 ‘그림자 보고서(Shadow Report)’는 함부르크의 건강성과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엄격한 잣대다. 수자원과 에너지 소비량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량, 심지어 고교 중퇴율까지 포함된 30개 이상의 지표는 도시의 건강을 입체적으로 진단한다. 이러한 시민 사회의 끈질긴 압력은 결국 2009년 경제 성장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맞춘 ‘책임 있는 성장’이라는 새로운 도시 전략을 이끌어 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도시가 지향해야 할 탁월한 ‘거버넌스’의 정수이다. 미래지향적인 거버넌스, 지속가능의 승리인 것이다.
함부르크시내 유럽 최대의 수변 재개발 사업인 ‘하펜시티(HafenCity)프로젝트’는 함부르크의 철학이 정점에 달한 사례다. 이곳에서 함부르크시는 토지를 가장 비싸게 파는 단기적 이익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공공 인프라 비용을 선제적으로 부담하며, 수변 재개발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시설들이 어우러지는 ‘사회적 혼합(Social Mix)’을 실현할 개발자를 선택한 것이다. 과거의 낡은 산업 항만은 이제 스타트업의 열정과 시민들의 만남이 교차하는 ‘도시적 만남(Urban Encounter)’의 장소로 변모했다.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은 도시의 사회적 건강성을 높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2006년부터 이어진 국제건축박람회(IBA Hamburg)를 통해 주민들이 분기별 조찬 모임과 실무 그룹에서 직접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운영한다. 낙후된 지역을 활력 넘치는 공동체로 탈바꿈시킨 원동력이었다.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거버넌스는 사회적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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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도시는 민주주의 속 거버넌스에서 완성된다. 함부르크의 사례는 우리에게 건강도시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그것은 단순히 병원을 짓거나 보건소 프로그램을 늘리는 물리적 확장이 아니다. 시민이 차 없이도 숲길을 따라 일터로 가고, 시민 위원회가 시정의 지속가능성을 수치로 따져 물으며, 가장 소외된 곳의 주민들이 직접 자기 동네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ESG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건강도시를 만드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강은 개인의 생물학적 상태를 넘어선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건강과 민주적 의사결정인 사회건강 구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도시 국가로서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통합적 행정과 시민 사회의 성숙한 참여는 지방 분권 시대를 맞이한 우리 지자체들이 나아가야 할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함부르크가 보여준 ‘녹색 연결망’과 ‘시민 주권’의 조화로운 힘이야말로 진정한 건강도시를 향한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