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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7.21 13:45 수정 2026.07.21 01:45

이경재 전주대 교수(전,경영대학장)
시 쓰는 경제학자
‘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저자

“니하오(你好).”
어느 날 아침, 창백한 얼굴의 중국인 유학생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학생은 매일 아침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다며 위내시경을 잘하는 병원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낯선 타국에서 홀로 아픔을 견디는 제자의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내시경 분야의 권위 있는 병원과 의사를 수소문해 소개해 주었다.
그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이국땅에서 병원이라는 공간은 유학생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장벽일 것이다. 접수창구에서부터 검사 과정의 설명,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숨 막히는 시간까지, 모든 과정이 외로움과 두려움의 연속일 터였다. 더구나 자녀를 멀리 보낸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아이가 혼자 아픔을 견딘다는 소식을 들으면 밤마다 가슴을 졸이며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결국 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내가 같이 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옆에서 도와줄 테니, 중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안심하시라고 전해요.”

검사 당일, 우리는 함께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의사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 이 친구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한국말이 아직 서툴러서 제가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왔습니다.”
그 순간,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의사가 학생을 바라보더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유창한 중국어로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몇 마디 단어를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그 옆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 잘못 들어온 엑스트라처럼, ‘도와주러 온 교수 이경재’의 존재감은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제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은 불과 몇 분 만에 무안함으로 바뀌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흐르던 불안과 거리감은 마법처럼 녹아내렸고, 시종일관 굳어 있던 제자의 얼굴에는 안도감의 미소가 번졌다.

모든 검사가 무사히 끝난 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중국어는 언제 그렇게 공부하셨습니까?”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끔 중국인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제대로 소통하며 진료하고 싶어서 틈틈이 혼자 공부했습니다.”
그 짧은 대답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평생 대학 강단에서 많은 중국인 유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적응을 돕고 고민 상담까지 해주었지만, 정작 ‘그들의 언어를 배워 더 깊이 다가가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베푼 친절은 어쩌면 철저히 내 중심적인 시선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은퇴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에서야 비로소 때늦은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는 흔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은 때로 냉정하다. 정말로 ‘그때’가 아니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기회와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도서 3장 1절은 선언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그렇다. 공부할 때가 있고, 내려놓을 때가 있으며, 또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할 때가 있다.
진료실에서 존재감을 잃고 서성였던 그 순간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삶의 나침반을 선물해 주었다. 지나간 세월 속에서 중국어를 배우지 못한 것은 아쉬운 후회로 남겠지만, 그 후회에 매몰되기보다 오늘 내게 허락된 ‘또 다른 시작의 때’를 붙잡고 싶었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여전히 새로운 배움과 도전의 가장 적절한 때라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역시 눈부신 ‘시작의 때’다. 그 소중한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기꺼이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남은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존재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econo@jj.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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