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칼럼 사설

노인 일자리, 단순 공공근로 넘어 자립형 설계가 시급하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9.17 13:11 수정 2026.09.17 01:11

전북특별자치도의 고령화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무려 25.6%에 달해 이미 도민 4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의 한복판에 진입했다. 이는 전국 평균(20.7%)을 크게 웃도는 수치일 뿐만 아니라, 중위연령 역시 50.5세를 기록했다.
이 같은 인구 구조의 격변은 지방 소멸 위험을 가속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에 도와 각 시군은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수만 개의 노인 일자리를 양산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은퇴 후 소득 절벽에 내몰린 고령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빈곤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재 전북 지역에서 공급되는 노인 일자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회의감이 든다.
대다수가 쓰레기 줍기나 잡초 제거 같은 단기·단순 공공근로 중심의 환경 정비 사업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도 팍팍하다. 최근 호남지방통계청과 지역 금융권 조사에 따르면, 도내 노인 일자리 참여율은 19.7%로 전국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일을 하려는 노인은 차고 넘치는데, 도내 노인 기초생활수급 비율은 26.7%로 여전히 전국 최고 수준을 맴돌고 있다. 많이 일하지만 여전히 가난하다는 이 기막힌 모순은 결국 현재의 정부·지자체 주도형 노인 일자리가 실질적인 소득 자립을 돕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한 달에 수십 시간 일하고 받는 30만~40만 원 안팎의 활동비는 당장의 연명책은 될지언정 노인 빈곤의 근본적인 고리를 끊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로 학력과 전문 역량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신(新)노년층이 두터워지고 있음에도, 이들의 고숙련 경험과 생산성을 단순 거리 청소에 사장시키는 것은 도 차원에서도 막대한 인적 자원의 낭비다. 이제 전북의 노인 일자리 정책은 양적 팽창 위주의 낡은 프레임을 깨고 질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 복지 예산의 시혜적 집행이라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노년층이 은퇴 후에도 당당한 경제 활동의 주체로 안착할 수 있도록 ‘자립형·생산성 노인 일자리 생태계’를 선제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인들의 숙련된 경험과 지역의 특화 산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 시급하다. 전북이 강점을 지닌 로컬푸드 가공 산업, 소상공인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과 시니어 인력을 결합해야 한다. 예컨대 전통 제조 기술이나 행정·회계 전문성을 가진 은퇴자들을 지역 공동체 비즈니스의 멘토나 핵심 인력으로 재배치하여, 일자리 자체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지속 가능성을 갖추도록 구조를 혁신하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지자체와 지역 대학, 상공업계가 참여하는 삼각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고령층 맞춤형 재교육 시스템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현장에 투입하는 일회성 안전 교육을 넘어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발맞춘 스마트기기 활용법부터 지역 기반 창업 교육까지 촘촘한 직업 훈련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노인 스스로가 변화하는 고용 시장의 수요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행정이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이다.
아울러 민간 기업이 고령 인력을 채용할 때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해 공공 주도의 일자리를 민간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전이시켜야 한다. 초고령 사회 전북의 미래는 노년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인을 부양과 돌봄의 대상인 복지 수혜자로만 가두어둔다면 지방 재정의 압박과 지역의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이들을 숙련된 생산 인력이자 지역 사회를 지탱하는 앵커로 활용한다면 초고령화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활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보이기식 일자리 숫자 늘리기보다는 단 한 개를 만들더라도 노인의 존엄을 지키고 경제적 자립을 담보하는 진짜 일자리를 설계해야 한다. 기초가 튼튼한 자립형 고령 산업 생태계를 다지는 것만이 백세시대를 맞이한 도민들에 대한 행정의 가장 엄중한 책무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주)전라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