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촌진흥청 일부 부서를 수도권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전해지면서 지역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의회가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문제는 이번 계획이 단순한 기관 이전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과 국정 과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도권 과밀과 지역 소멸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그 해법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다. 실제로 세종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심어주기 위한 국가적 결단이었다. 농촌진흥청이 전북으로 이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일부 부서를 다시 수도권으로 돌리겠다는 발상은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퇴행적 조치다.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 농업 연구의 컨트롤타워이자 농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정책 지원 기관이다. 전북은 오랫동안 농생명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왔고, 농촌진흥청 이전은 그 과정을 가속화한 중요한 계기였다. 대통령 공약으로도 명확히 제시된 ‘농생명 산업 수도 전북’ 구상은 농촌진흥청과 지역 농업 연구 기관들이 함께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비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능을 수도권으로 빼내려 한다면 전북의 농생명 산업 발전은 물론, 국가 전체의 농업 혁신에도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지역민의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은 단순한 행정 효율성 차원이 아니라, 지역과 수도권이 함께 살아가는 국가 균형발전 전략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효율성이나 접근성만을 이유로 지방 이전 기관의 기능을 다시 수도권으로 흡수한다면, 앞으로 국가 정책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농업·농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농민과 도민에게 돌아갈 것은 실질적 지원이 아니라 상실감과 분노뿐일 것이다.
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과제다.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는 저출생·고령화·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막아낼 수 없다. 오히려 지역이 자립적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만 국가 전체의 활력이 살아난다. 농촌진흥청 일부 부서의 수도권 이전은 정부 스스로 이러한 원칙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철회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지역과 상생하며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열어가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대통령이 약속한 농생명 산업 수도 전북의 비전 역시 말뿐이 아니라 실천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촌진흥청 일부 부서를 수도권으로 되돌리겠다는 발상은 당장 멈추어야 하며, 오히려 지방에서의 연구 역량과 지원 기능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농업은 대한민국과 전북의 뿌리이자 생존과 직결된 산업이다. 농촌진흥청이 수도권 중심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굳건히 지켜낼 때만이 농업도, 지역도, 국가도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사안에서 정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는 단순한 부서 이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균형발전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수도권 일극 체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