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 이선옥
새벽안개에 젖어 잠들지 못한 어둠 속을
나는 서성인다
영글지 못한 이슬처럼
떨어지지도 못한 채
잔설 위에 맺힌 투명한 망설임
나는 누구인가?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되짚고 있는가?
넋이 나간 영혼은 거울처럼 텅 빈 창가를
을씨년스레 떠돌 때
마른 바람이 스쳐 간 가슴은
부질없는 말 한 조각처럼 허공에서 흩어진다
그 조각은 별 하나에 기대어
볼을 타고 흐른다
이념과 사념 사이에서 생각은 길을 잃고
새벽 여명에 혼을 벗는다
상념의 시간 속
깨달음은 흩어진 편린으로 남고
슬픈 하늘 아래 그리움은 한 방울씩
가슴에 떨어진다
별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혼자 남은 허무다
□ 정성수의 詩 감상 □
시「허무」는 인간 존재의 깊은 내면을 응시하며, 정체성의 상실과 삶의 무게 속에서 길을 잃은 자아의 고독을 절제된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의 시작에서 ‘새벽안개에 젖어 잠들지 못한 어둠’은 단지 시간적 배경이 아니라, 혼란과 공허로 가득한 내면세계의 풍경을 상징한다. 안개와 어둠은 삶의 불투명함과 방향 상실을 의미하며, 그 속을 ‘서성이는’ 화자의 모습은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 존재의 초상을 보여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은 철학적 성찰이자, 자아 탐색의 시작이다. 이어지는 ‘영글지 못한 이슬’, ‘잔설 위에 맺힌 투명한 망설임’ 등의 표현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삶과 결정하지 못한 선택의 무게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거울처럼 텅 빈 창가를 떠도는 넋’은 정체성과 존재감이 흐려진 현대인의 내면을 상징하며, 외적 현실과 내적 세계 사이의 괴리감을 강조한다.
시의 중반에서 “마른 바람”, “흩어진 말 조각”, “별 하나에 기대어 흐르는 눈물” 등의 이미지는 슬픔과 고독이 정제된 시어로 표현되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념과 사념 속에서 길을 잃는 생각은 현실과 사상,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인간 정신의 혼란을 반영한다.
결국, 시인은 새벽 여명 속에서 혼을 벗고, 모든 사유와 감정은 ‘편린’처럼 흩어진 채 남는다. 이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며, 모든 것이 해체된 후 남는 것은 ‘슬픈 하늘 아래’ 떨어지는 그리움과 가슴속에 내려앉는 허무뿐이다. 마지막 구절 ‘별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혼자 남은 허무다’는 시인의 존재론적 절망이 응축된 문장이며, 외롭고 공허한 인간 실존의 상태를 강하게 각인시킨다.
따라서 시「허무」는 정제된 이미지와 사색적 언어를 통해, 현대인이 겪는 내면의 혼돈과 존재의 부유를 절묘하게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잃고 흔들리는 자아의 슬픔을 직면하게 만들어,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성찰의 시간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