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한 14개 시군이 내년도 국가예산 확보를 놓고 자화자찬에 빠져 있다. “전년도보다 늘었다”, “역대 최대치다”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예산 규모를 과시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고, 진정한 지역 발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예산은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지역민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 실행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중앙 정부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총지출 규모는 728조 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올해 본예산(약 673조 3,000억 원) 대비 54조 7,000억 원, 즉 8.1% 증가한 ‘슈퍼 예산’이다. 국가적으로도 이례적인 확장 기조다. 전북특별자치도의 몫도 역대 최대인 1,228건, 총 9조 4,585억 원이 반영됐다. 언뜻 보면 ‘성과’라 불러도 손색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근 지역의 증가율을 보면, 광주 10.1%, 전남5.9%, 대구 6%, 충북 5.5%에 비하면 전북의 증가율은 정부안 기준 4.3%에 그친다. ‘역대 최대’라는 수식어 뒤에는 “국가 전체 증가율보다 낮은 증가율”이라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전북의 구조적 열위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증액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예산의 진짜 가치는 사업이 가져올 지역 변화와 효과에 있다. 단순히 늘어난 총액을 강조하는 대신, 그 안에 담긴 사업이 지역민의 삶에 어떤 파급을 줄 수 있는지를 짚어야 한다.
실제로 전북이 확보한 예산 속에는 새만금 국제공항 1,200억 원, 인입철도 150억 원, 고속도로 건설 등 핵심 SOC와 함께 AI 플랫폼 400억 원, 이차전지 평가 기반 22억 원, 친환경 산업 인프라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지역 성장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실질적 예산이다. 새만금 사업의 경우, 수십 년간 미뤄져 온 숙원 과제였고, 인공지능·이차전지 관련 사업은 미래산업의 초석이다. 그러나 단순 확보에서 끝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질적 집행과 연계, 그리고 지역 산업과의 결합이 뒤따를 때 비로소 진정한 ‘전북 발전의 예산’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치밀한 사업 발굴이 필요하다. 전북도는 이미 세 차례 신규사업 보고회를 통해 510건, 6,183억 원 규모 사업을 발굴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미래 먹거리 산업, 새만금과 연계된 SOC, 특례제도를 반영한 전략사업들이다. 이는 지역 행정이 단순한 ‘증액’ 논리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어떤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발굴 없는 확보 과시는 허상일 뿐이고, 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지역 발전의 관점에서 시작된 예산이야말로 의미 있는 변화의 밑거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실질적인 실행과 성과 확보 기간이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심의·확정되는 과정에서 도정과 정치권은 전북의 구조적 성장과 균형 발전 전략 중심의 보완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왜 전북이 국가 총증가율에 못 미친 점에 대해 ‘왜’ 질문과 함께 어떤 신산업과 사회 인프라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는 자세가 요구된다.
진정한 균형 발전이란, 어디보다 더 많이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보다 효과적으로 지역을 바꾸는 ‘전략적 예산 운용’에 달려 있다. 선심성 퍼주기식 지원이나 수치 자랑이 아니라, 지역민 삶의 질과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이끄는 예산 설계야말로 박수를 받을 대상이다.
성과 중심의 정책 실행, 숫자가 아닌 지역 변화를 일으키는 예산, 선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기획이 전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진짜 전력이 될 것이다. 내년의 국가예산은 단순히 ‘얼마를 따왔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변화를 준비했느냐’의 물음 앞에 서 있다. 전북의 답변은 오직 결과로만 증명될 것이다.